■ 이전
□ 이승만 연임
▶ 1952.7 이승만은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키고,
▶ 1952.7 제헌절
경축식에서는 국민투표제 도입과 대통령 탄핵 요건 강화 등 추가적인
개헌을 밝힘.
▶ 1952.8
2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연임에 성공함.
□ 개헌을 위한 의원 확보
▶ 1954.4 정당
공천제가 도입된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승만은 자유당 후보들에게
개헌 지지 서약을 강요했고,
▶ 1954.4
자유당을 중심으로 ‘개헌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개헌안을 마련함.
▶ 1954.5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은 114석을 확보하며 압도적으로 승리했고,
▶ 1954.6 다양한
협박으로 무소속 의원들을 끌어들여 개헌에 필요한 136석을 확보함.
■ 사사오입 개헌
□ 개헌안 발의
▶ 1954.9 개헌안이
국회에 공식 발의됨.
- 개헌안은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 철폐, 대통령 공석 시 부통령 승계, 국민투표제 도입,
국무위원 개별 불신임권 부여, 경제체제의 사유·사영 중심 전환 등을
핵심으로 함.
▶ 야당은 개헌안에 맞서 반대운동을
벌였지만, ‘뉴델리 밀회설’로 인해 결집력이 약화됨.
↘ 1953년 신익희 국회의장이 남북협상 관련 밀담을
나눴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
□ 개헌안 부결
▶ 11.27 비밀투표로
개헌안 표결을 진행함.
▶ 개헌안 통과를 위해 재적 의원 203명 중 136명(2/3)의 찬성이
필요했지만, 재석 202명 중 135명만 찬성해 1표 차이로
부결됨.
↘ 203*(2/3) = 135.333... 로 개헌안이 통과되려면
최소 136명의 찬성표가 필요함.
□ 사사오입 논리와 개헌안 강행 통과
▶ 11.28 자유당과 정부는 소수점 이하는 사사오입(반올림) 원칙에 따라
버려야 하므로 찬성 135표면 충분하다는 논리(?)를
제기함.
▶ 11.29 자유당 측
부의장이 개헌안 부결 선언을 취소하고, 이를 다시 가결로 번복하여
선포함.
▶ 이에 야당 의원들은 강력히 항의하며
퇴장했으나, 정부와 자유당은 거수투표를 통해 개헌안을 공식적으로 강행
처리함.
- 이로써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이 철폐되고 국무총리제가
폐지되며 이승만은 영구 집권의 기반을 마련하게 됨.
■ 이후
▶ 1954.11
사사오입 개헌의 불법성과 강행 처리에 대한 반발로 자유당 내 일부
의원들이 탈당하고 야당이 결집해 호헌동지회를 결성하는 등 정치적
반발이 이어짐.
▶ 1956
이승만이 3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고, 민주당 장면 후보가 부통령에
당선됨.
▶ 1960
이승만은 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부정선거 논란과 함께
4.19 혁명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