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몽골 제국의 팽창과 쿠빌라이의 즉위
▶ 1259
고려 제24대 원종이
즉위하고,
▶ 1260
쿠빌라이가 몽골 제국의 대칸에 즉위할 무렵,
- 몽골은
서쪽으로 흑해 북부와 지중해 동쪽 해안 일대까지 세력을 넓히고
있었으며, 남쪽에서는 남송을 압박하고 있었음.
↘ 흑해 북부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일대, 지중해
동쪽 해안은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레바논 일대이며, 남송은
임안(지금의 항저우시)에 수도를 두었음.
□ 몽골의 일본 복속 추진과 고려의 부담
▶ 1266> 몽골은
동쪽에 있는 일본에도 복종을 요구하였으나, 고려는 일본과 전쟁이
벌어질 경우 군사 동원과 군량·물자 조달에 따른 부담을 우려하여 이를
만류하려 하였음.
▶ 그러나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가
몽골의 요구에 공식적인 답변을 보내지 않으면서 갈등이 깊어졌고,
▶ 1271 결국 몽골이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시작하자 고려는 병참기지
역할을 맡게 되었음.
▶ 이후 고려군과 몽골군이
삼별초의 저항(1270~1273)을 진압하는 데
투입되면서 일본 원정은 연기되었음.
↘ 삼별초가 일본 원정의 주요 거점이 될 수 있는
제주도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몽골은 일본 원정에 앞서 삼별초를
진압하고자 하였음.
■ 몽골의 일본 원정
□ 1차 원정
▶ 1274
제25대 충렬왕이 즉위한
가운데,
▶ 1274.10
김방경이 이끄는 고려군 약 8천 명을 포함하여 몽골·고려 연합군 약 4만
명이 일본 원정에 나섰음.
▶ 연합군은
쓰시마섬(대마도)과 이키섬을 차례로 공격한 뒤,
▶ 규슈의
하카타(지금의 후쿠오카현)에 상륙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음.
▶ 10.20 이후 원정군은 전함으로 일시 퇴각했는데, 이날 밤 폭풍이
몰아쳐 다수의 선박이 파손되었고,
▶ 1274.11 이에
따라 큰 피해를 본 원정군은 일본에서 철수하였음.
□ 2차 일본 원정의 배경과 준비
▶ 1275 쿠빌라이는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였으나,
▶ 가마쿠라 막부는 이들을
처형하고 하카타만(지금의 후쿠오카현 북서부) 연안에 방어시설을
건설하며 재침입에 대비하였음.
▶ 1276
원은 남송의 수도를 함락시킨 뒤 일본 원정을 다시 추진하였음.
↘ 남송에 남은 세력이 저항을 이어갔지만, 1279년
애산 전투에서 패하며 최종적으로 멸망함.
▶ 1280.8 이를 위해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하여 전함·병력·군량 등을 준비하도록 하였으며,
▶ 1280.10
옛 남송의 군사들을 중심으로 약 10만 명 규모의 강남군을
조직하였음.
□ 2차 일본 원정과 실패
▶ 1281.5 김방경이
이끄는 고려군과 몽골·한군으로 구성된 동로군이 합포에서 출항하면서
다시 일본 원정이 시작되었음.
▶ 동로군은 쓰시마섬과
이키섬을 공격한 뒤 규슈로 진격하였으나,
▶ 하카타만
상륙에 어려움을 겪었고 시카섬 등지를 공격하는 동안 전염병과 강남군의
합류 지연으로 원정에 차질이 발생하였음.
▶ 1281.7
이후 중국 경원(지금의 저장성 닝보시)에서 출항한 강남군이 합류하여
규슈 상륙을 다시 시도했지만,
▶ 1281.8.1 태풍이 몰아쳐 다수의 함선이 파손되고 특히 강남군이 막대한
피해를 보았음.
↘ 일본에서는 두 차례 원정 때의 폭풍을 ‘신의
바람(가미카제)’이라 부름.
▶ 1281.8 결국
원정군의 잔여 병력이 합포(지금의 경남 창원시)로 철수하면서 2차 일본
원정도 실패로 끝났음.
■ 이후
▶ 쿠빌라이는 다시 일본에 사신을 보내고 전쟁 물자를
준비하며 제3차 원정을 추진하였음.
▶ 1287
그러나 만주 지역에서 내안(나얀)의 반란이 일어나 원정 계획이
중단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원정이 논의되었으나 실제 출병으로
이어지지 않았음.
↘ 칭기스칸의 동생들에게서 시작된 동방3왕가의
내안이 쿠빌라이에게 반기를 들며 일으킨 반란.
▶ 1294 쿠빌라이가 사망하면서 몽골의 일본 원정은 최종적으로
중단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