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만적의 난


노비들이 스스로 신분 질서를 뒤집으려 했지만, 실제 봉기로 이어지지는 못함.

만적의 난

■ 무신정변 이후
□ 신분 질서의 동요와 하층민 저항의 확산
 ▶ 1170년 정중부·이의방 등이 무신정변을 일으킨 이후, 고려 사회 곳곳에서는 다양한 저항이 나타나게 됨.

 ▶ 1170s 초기에는 김보당의 난조위총의 난처럼 무신정권에 반대하는 관료와 지방 세력의 반란이 일어났고,
 ▶ 1176 충청도 지역에서는 망이·망소이가 과중한 수취와 신분 차별에 맞서 봉기하였음.
 ▶ 1183 특히 경대승이 사망한 뒤, 이의민이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노비와 천인들도 신분 상승의 가능성을 의식하게 되었음. 
 ↘ 이의민은 소금장수인 아버지와 사찰 노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의종의 눈에 띄어 장교가 되었고, 이후 무신정변에 참여하며 권력의 중심으로 성장하였음.
 ▶ 1193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경상도 일대에서도 김사미·효심의 난이 일어나는 등 기존 지배 질서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었음.

□ 최씨 무신집권의 시작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 세력을 제거한 뒤 무신정권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 부상하였음.

■ 만적의 난
□ 봉기의 계획과 준비
 ▶ 1198.5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은 다른 노비 다섯 명과 함께 봉기를 모의하고, 공노비와 사노비를 규합해 대규모 거사를 준비하였음. 
 - 이들은 궁궐의 관노들과 함께 봉기하여 먼저 최충헌을 제거하고, 각자의 주인을 죽인 뒤
 - 노비 장부를 불태워 신분 질서에서 벗어나려 하였음. 

□ 거사의 실패와 진압
 ▶ 그러나 약속한 날에 예상보다 훨씬 적은 수백 명만 모이자, 거사를 4일 뒤로 연기하였음.
 ▶ 이후 한충유의 노비가 봉기 계획을 주인에게 밀고하면서 계획이 발각되었고,
 ▶ 만적을 비롯한 100여 명이 체포되어 강에 던져져 죽임을 당하면서 봉기는 실행되지 못한 채 끝났음. 

■ 봉기 이후
 ▶ 이후 최씨 무신정권의 강력한 탄압이 이어지면서 농민과 천민의 저항 운동은 점차 약화되었음.




# 참고 자료
[만적의 난]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9.7
[만적]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