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냉전 체제
🗺️ 1945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냉전 체제로 접어들었고,
▶ 1948
한반도에서는 남한에
대한민국,
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각각 수립되면서 분단이 공식화되었음.
🌏 1949
이후 2차 국공내전의
결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밀려났음.
▶ 1950
이어 발생한
6.25 전쟁에는 미국과
중국이 각각 참전하면서 양국 간의 적대 관계가 형성됨.
▶ 1968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북한은 군사 모험주의적 성향을 보이며 1.21
사태,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
일련의 무력 도발을 잇달아 감행하였음.
🗺️ 데탕트(긴장 완화)
▶ 1969 닉슨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 소련은 군비 경쟁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한편 중국과 소련은 사회주의 이념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했음.
▶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외교
관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임.
- 그 배경에는
베트남 전쟁의 출구
전략을 마련함과 동시에,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소련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있었고,
- 중국 역시 소련을
견제하는 한편,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미국의
인정을 얻어내고자 했음.
🗺️ 미중 정상회담
▶ 1969.11 미국과
중국은 외교 채널을 통한 비밀 접촉을 시작함.
▶ 1971.4
이어 미국 탁구 대표팀이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가지면서 양국 간 우호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 1972.2
이어 미국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공식 방문함으로써 양국 간 최초의
정상회담이 성사됨.
▶ 미중 관계 개선 과정에서 한반도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남북한은 강대국의 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자율적인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대화에 나설 필요성이 생겼음.
■ 7.4 남북 공동성명
□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
▶ 1971.9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이 열리면서 남북 간 접촉이
시작됨.
▶ 적십자 대표단에 포함된 중앙정보부의
정홍진과 북한의 김덕현 간 비밀 접촉을 통해 정부 차원의 대화가
물밑에서 진행되었음.
▶ 1972.5
이어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해 김일성과 두 차례
회담했으며,
▶ 1972.5
이에 상응하여 북한의 박성철 부수상이 서울을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과
비공개 회담했음.
▶ 1972
이러한 비밀 회담을 통해 남북은 남북 공동 성명 발표와 남북조절위원회
설치 등을 합의함.
□ 공동성명 발표
▶ 1972 남북은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통일 원칙을 담은 역사적인 7.4 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함.
- 양측은 상호 중상 비방과 무력 도발을
자제하고, 교류를 확대하기로 하였으며, 남북조절위원회 설치와 직통전화
개설을 통해 합의 이행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했음.
- 이는
남북이 처음으로 평화통일의 원칙에 합의한 역사적 문건이었으나, 국호와
서명자 직책이 명시되지 않아 남북 대화의 불안정성과 제도적 한계 또한
드러냈음.
□ 남북 회담
▶ 1972.8~1973.7
남북 적십자 본회담에서는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문제를
논의했으나 구체적인 성과는 미미했고,
▶ 1972.10~1973.6 남북조절위원회 회담은 경제·사회적 교류 우선을 원하는 남한과
군축 등 정치 문제 우선을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짐.
□ 독재 체제 강화
▶ 1972년 말 남한은 ‘통일 대비’를 명분으로
유신헌법을 선포했고,
북한은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하여 유일사상과 김일성 후계 체제를
공식화하며 양측 모두 내부 독재 체제를 강화했음.
□ 남북대화 중단
▶ 1973 남한 정부는
‘6.23 선언’을 통해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힘.
- 그러나 이는 사실상 ‘두 개의
한국’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민족통일 논리를 앞세우던
북한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음.
▶ 8.28
결국 북한은 김대중 납치 사건과 6.23 선언을 비난하며 일방적으로
남북대화 중단을 선언함.
■ 이후
▶ 1974.3
이후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하며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