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BCE 11C~
중국 주나라 대 국학에 하나로 시작한 대학(태학)은
▶ BCE 2C~
한나라 무제 때 중앙에 설치되며 제도화되었고, 이후 시대마다 설치와
폐지를 거듭하였음.
□ 고구려의 굴욕
▶ 342 고구려는
전연과의 전쟁에서 패해 환도성이 함락되고 왕족과 백성이 포로로 잡히는
치욕을 겪었으며,
▶ 371
이어 백제와의 전쟁에서도
고국원왕이 전사하는
비극을 맞이하였음.
▶ 371
왕위에 오른 소수림왕은
혼란을 극복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내치에 힘을 쏟음.
■ 태학 설립
□ 고구려의 국립 교육기관
▶ 372년 소수림왕은
불교를 수용하고, 지배층 자제들을 교육하는 태학을 설립함.
- 당시 전진은 황제가 태학을 중시하며
학문을 장려했고, 전연도 지배층 자제들을 위한 학교 제도를
운용했음.
- 고구려의 태학은 이러한 전진의 태학과
전연의 동상(교육기관)을 모델로 삼아 유교 경전뿐 아니라 군사학과 무예까지 함께 교육하는 기관으로
운영되었을 것으로 보임.
▶ 373 이어
소수림왕은
율령을 반포하는데,
- 이에 따라 율령에 기초한 문서 행정을
담당할 인재가 요구되면서 태학은 곧 율령 체제를 뒷받침하는 인재 양성
기관으로 기능하게 되었음.
□ 백제와 신라의 국립 교육기관
- 백제는 문헌 기록에는 태학의 존재가 보이지
않지만,
▶ 6C 경
진법자 묘지명의 ‘태학정’ 기록을 통해 27대 위덕왕 시기에는 태학이 설립·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음.
▶ 682년 신라는 신문왕 때 국학을 설치함.
■ 이후
- ‘한원’에 보이는 국자박사 기록으로 볼 때,
고구려 말기에는 태학과 함께 국자학도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큼.
↘ 한원은 당나라 때 편찬된 문헌으로, 고대
한국사를 비롯한 다양한 기록을 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