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신라 26대 진평왕

백정, 25대 진지왕의 조카, 27대 선덕여왕의 아버지
579년부터 632년까지 약 54년 동안 왕위에 있었음.

진평왕은 위화부 설치 등으로 인사·행정 체계를 중앙집권화했고,
백제·고구려 압박 속에서 수·당과의 외교를 관계를 이어감.

진평왕

■ 즉위 이전
 ▶ 566 진흥왕은 신라에서 처음으로 장남(동륜, 진평왕의 아버지)을 태자로 세웠으나,
 ▶ 572 태자인 동륜이 먼저 세상을 떠났음.
 ▶ 576.8 이후 진흥왕이 세상을 떠나고, 진지왕(사륜, 동륜의 동생)이 왕위를 이음.

■ 재위 기간
 ▶ 579년 진지왕이 세상을 떠나고, 조카인 진평왕이 즉위함.
 ↘ ‘삼국유사’에는 진지왕은 방탕한 생활로 정사가 문란해져 국인들에게 폐위된 것으로 기록됨.

□ 행정조직 정비
 ▶ 579 진평왕은 노리부를 상대등으로 세우고 동생들을 진정갈문왕과 진안갈문왕에 봉해 통치 기반을 마련했으며,
 ▶ 580 후직을 병부령에 임명해 군사권을 정비하고,
 ▶ 581 중앙행정관부인 위화부를 처음 설치해 관리 인사권을 국가가 직접 주도하는 체계를 갖춤. 

 ▶ 583 이어서 선박 업무를 담당하는 선부를 설치함.
 ▶ 584 연호를 건복으로 바꾸고, 조부(조세를 담당)와 승부(수레와 탈것을 담당)에 각각 영(令) 1명을 두었으며,
 ▶ 586 예부(의례를 담당)에는 영 2명을 배치함.
 ▶ 591? 사신 접대를 담당한 영객부에도 영 2명을 둠.

 ▶ 591, 593 남산성을 새로 쌓고 명활성과 서형산성을 보수하여 방비를 강화했음.
 ▶ 594 이어 진평왕은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고 신라왕에 봉한다는 조서를 받음.

□ 백제와 고구려의 공격
 ▶ 602 백제 무왕 대 귀족 세력이 아막성을 공격했으나 신라는 이를 격퇴하였으며, 
 - 602 소타·외석·천산·옹잠의 네 성을 쌓아 백제를 압박했음.

 ▶ 603 고구려는 북한산성을 공격한 뒤
 ▶ 608 신라 북쪽 경계를 침범하고 우명산성을 점령하였음.
 - 608 같은 해, 진평왕은 원광법사에게 걸사표를 작성하게 하여 수나라에 고구려 정벌을 요청함.

 ▶ 611 백제가 가잠성을 점령하자,
 ▶ 616 신라는 모산성에서 백제와 전투를 벌였고
 ▶ 618 이어 가잠성에서도 다시 전투를 치렀음.

□ 당과의 외교
 ▶ 621 당이 세워지자(618) 진평왕은 사신을 보내 새 왕조와의 외교를 시작했으며,
 ▶ 631 > 이후 1~2년 간격으로 사신을 파견해 외교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관계 강화를 꾸준히 이어갔음. 

□ 행정조직 정비
 ▶ 622 용수를 내성(왕실 업무)사신으로 임명해 대궁·양궁·사량궁을 통합하여 관리하게 하였으며,
 ▶ 623 군사를 담당하는 병부에는 대감 2명을 둠.
 ▶ 624 시위부(왕과 궁궐 수비)에 대감 6명을 두고, 상사서(유공자에 대한 포상)와 대도서(불교 관련)에 각각 대정 1명을 배치함.

□ 낭비성 전투
 ▶ 629 고구려와 낭비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신라군은 처음에 크게 패했음.
 ▶ 그러나 김유신이 적진으로 돌격해 적장을 쓰러뜨리면서 전세를 뒤집어 승리를 거둠. 

■ 사후
 ▶ 632년 봄 진평왕이 세상을 떠났고, 아들이 없어 첫째 딸인 선덕여왕이 즉위함.

 ▶ 1969  경주 진평왕릉 이 사적 제180호로 지정됨.




# 참고 자료
[진평왕]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