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566
진흥왕은 신라에서
처음으로 장남(동륜, 진평왕의 아버지)을 태자로 세웠으나,
▶ 572
태자인 동륜이 먼저 세상을 떠났음.
▶ 576.8
이후 진흥왕이 세상을 떠나고, 진지왕(사륜, 동륜의 동생)이 왕위를
이음.
■ 재위 기간
▶ 579년 진지왕이
세상을 떠나고, 조카인 진평왕이 즉위함.
↘ ‘삼국유사’에는 진지왕은 방탕한 생활로 정사가
문란해져 국인들에게 폐위된 것으로 기록됨.
□ 행정조직 정비
▶ 579 진평왕은
노리부를 상대등으로 세우고 동생들을 진정갈문왕과 진안갈문왕에 봉해
통치 기반을 마련했으며,
▶ 580
후직을 병부령에 임명해 군사권을 정비하고,
▶ 581 중앙행정관부인 위화부를 처음 설치해 관리 인사권을 국가가
직접 주도하는 체계를 갖춤.
▶ 583 이어서
선박 업무를 담당하는 선부를 설치함.
▶ 584
연호를 건복으로 바꾸고, 조부(조세를 담당)와 승부(수레와 탈것을
담당)에 각각 영(令) 1명을 두었으며,
▶ 586
예부(의례를 담당)에는 영 2명을 배치함.
▶ 591?
사신 접대를 담당한 영객부에도 영 2명을 둠.
▶ 591, 593
남산성을 새로 쌓고 명활성과 서형산성을 보수하여 방비를 강화했음.
▶ 594
이어 진평왕은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고 신라왕에 봉한다는
조서를 받음.
□ 백제와 고구려의 공격
▶ 602 백제 무왕 대 귀족
세력이 아막성을 공격했으나 신라는 이를 격퇴하였으며,
- 602
소타·외석·천산·옹잠의 네 성을 쌓아 백제를 압박했음.
▶ 603
고구려는 북한산성을 공격한 뒤
▶ 608
신라 북쪽 경계를 침범하고 우명산성을 점령하였음.
- 608
같은 해, 진평왕은 원광법사에게 걸사표를 작성하게 하여 수나라에
고구려 정벌을 요청함.
▶ 611
백제가 가잠성을 점령하자,
▶ 616
신라는 모산성에서 백제와 전투를 벌였고
▶ 618
이어 가잠성에서도 다시 전투를 치렀음.
□ 당과의 외교
▶ 621 당이
세워지자(618) 진평왕은 사신을 보내
새 왕조와의 외교를 시작했으며,
▶ 631 > 이후 1~2년 간격으로 사신을 파견해 외교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관계 강화를 꾸준히 이어갔음.
□ 행정조직 정비
▶ 622 용수를
내성(왕실 업무)사신으로 임명해 대궁·양궁·사량궁을 통합하여 관리하게
하였으며,
▶ 623
군사를 담당하는 병부에는 대감 2명을 둠.
▶ 624
시위부(왕과 궁궐 수비)에 대감 6명을 두고, 상사서(유공자에 대한
포상)와 대도서(불교 관련)에 각각 대정 1명을 배치함.
□ 낭비성 전투
▶ 629 고구려와
낭비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신라군은 처음에 크게 패했음.
▶ 그러나 김유신이 적진으로 돌격해 적장을 쓰러뜨리면서 전세를
뒤집어 승리를 거둠.
■ 사후
▶ 632년 봄
진평왕이 세상을 떠났고, 아들이 없어 첫째 딸인 선덕여왕이 즉위함.
▶ 1969
경주 진평왕릉 이
사적 제180호로 지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