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조위총의 난


조위총은 의종의 죽음 이후 무신정권을 타도하겠다는 명분으로 서경에서 군사를 일으켰고, 북계의 여러 성이 이에 호응하였음.
그러나 서경이 고립되면서 관군에게 진압되었음.

조위총의 난

■ 배경
□ 무신정변과 무신정권의 성립
 ▶ 1170.8 정중부·이의방 등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의종을 폐위하면서 무신 집권기가 시작되었음.
 ▶ 초기 권력은 소수 무신에게 집중되었지만, 이후 이의방이 경쟁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주도하였음.

□ 김보당의 난과 의종의 죽음
 ▶ 1173 김보당이 동계에서 군사를 일으켜 의종을 복위시키려 했으나 실패하며, 김보당을 비롯한 많은 문신과 의종이 목숨을 잃었음.

■ 조위총의 난
□ 조위총의 거병과 진격
 ▶ 1174년 9월 조위총은 의종의 원수를 갚고 무신정권을 타도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서경에서 군사를 일으켰음. 
 ↘ 조위총은 병졸에서 출발해 서경의 책임자까지 오른 무신으로, 의종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로 보임.
 - 여기에 중방의 북계 토벌에 대한 불안과 무신정권을 향한 북방 주민들의 반감이 더해지면서, 황해도 북부에서 평안도와 함경도 일대에 이르는 여러 성이 조위총에게 호응하였음. 
 ▶ 1174.10 이에 조정은 토벌군을 편성해 공격에 나섰으나 개경 방어의 요충지인 절령역(자비령)에서 패배했고,
 ▶ 서경군은 개경 서쪽의 권유로까지 진격해 주둔하였음.

□ 이의방의 반격과 서경군의 약화
 ▶ 이의방은 개경에 있던 서경 출신 관리들을 처형한 뒤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서경군을 서경까지 몰아냈음.
 ▶ 이어 서경성 외곽에서 압박을 이어 갔으나 혹독한 추위와 서경군의 저항으로 인해 개경으로 귀환하였음.
 ▶ 이의방이 개경에서 군사를 재정비하였고, 이 시기 서경군에 가담했던 여러 성이 조정에 귀순하면서 서경군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음.

□ 서경의 고립과 금 복속 시도의 실패
 ▶ 1174.12 개경에서 정중부가 이의방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였고,
 ▶ 1175 서북 지역에서는 여러 성이 차례로 조정에 항복하면서 서경은 점차 고립되었음.
 - 1175.5~6 이 무렵 조정에서는 의종의 국상이 진행되었으며, 조위총은 금에 복속하겠다는 뜻을 전하려 했으나 관군에게 차단되었음.
 ▶ 1175.9 이후 조위총은 다시 금에 복속을 요청했지만, 금 세종에게 거부당했음. 

 - 1176.1 한편, 공주 명학소에서는 망이·망소이의 난이 일어남.

□ 서경성 함락과 조위총의 최후
 ▶ 1176.3 조위총은 서북 지역의 군사를 다시 결집하려 했으나 실패하였고,
 ▶ 1176년 6월 이후 윤인첨 등이 이끄는 관군이 서경성을 함락하면서 조위총의 난은 막을 내리게 됨. 
 ▶ 사로잡힌 조위총은 처형되었지만, 남은 세력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봉기하였음.

■ 이후
□ 남부 지역 민란의 확산
 ▶ 1176.9 망이·망소이의 난이 점차 확산하였으며,
 ▶ 1177 이후 손청의 난과 미륵산적의 난 등이 잇따라 일어났음.

조위총의 난


# 참고 자료
[조위총의 난]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