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고려-몽골 전쟁

몽골의 침입, 여몽전쟁

강동성 전투로 시작된 고려와 몽골의 관계는 저고여 피살 뒤 전쟁으로 바뀌었음.
고려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오랫동안 항전했으나 큰 피해를 보았고,
결국 몽골과 강화를 맺은 뒤 무신정권의 종식과 삼별초 항쟁으로 이어졌음.

고려-몽골 전쟁

■ 배경
□ 거란의 침입과 고려·몽골의 접촉
 ▶ 1206 칭기즈 칸이 몽골을 통일하고 세력을 확대하자,
 ▶ 1211 금의 지배를 받던 거란 유민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후 몽골과 금에 밀려 고려로 침입하였음.
 ▶ 1219.2 고려군은 거란을 추격해 온 몽골군과 연합하여 강동성에 머물던 거란 세력을 진압하였고,
 ▶ 이를 계기로 고려와 몽골은 형제의 맹약을 맺었음. 

 ▶ 그러나 이후 몽골의 과도한 공물 요구로 고려의 부담이 커졌고,
 ▶ 1225 몽골 사신 저고여가 귀국 도중 피살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하였음. 
 - 몽골은 이를 고려의 책임으로 돌려 맹약을 파기하였고, 이후 고려 침입의 명분으로 삼았음.

■ 고려-몽골 전쟁
□ 몽골의 1차 침입과 화의 체결
 - 1229 몽골에서는 제2대 오고타이 칸이 즉위하였고, 금 정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후방을 안정시키려 하였음.

 ▶ 1231년 8월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이 함신진으로 침입해 정주·철주 등을 함락하였음. 
 ↓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세대’로 언급되는 1220년대생은 어린 시절부터 몽골의 침입을 겪으며 청·장년기 대부분을 여몽전쟁 속에서 보내게 됨...
 ▶ 1231.9 이에 고려 중앙군은 동선역 전투에서 농민군의 활약에 힘입어 승리한 뒤 북상하였으나,
 ▶ 1231.10 안북성 전투에서 몽골 기병에게 크게 패배하였고, 이후 몽골군은 개경을 거쳐 충주(지금의 충북 충주시)까지 남하하며 고려를 압박하였음.
 - 1231.9~12 한편 귀주성 전투에서 고려군은 몽골군의 공격을 끝까지 막아냈음.

 ▶ 1231.12 결국 고려는 몽골에 화친을 요청하여 화의를 맺었고,
 ▶ 1232.1 몽골은 북계 여러 지역에 72명의 다루가치(감독관)를 설치한 뒤 철수하였음.

□ 강화 천도와 몽골의 2차 침략
 ▶ 1232.6 고려는 몽골이 설치한 다루가치들을 살해하였고,
 ▶ 1232년 7월 당시 무신집권자 최우는 몽골과의 항전을 준비하며 강화 천도를 단행하였음. 
 ▶ 1232.8 이에 몽골은 개경 환도와 고종·최우의 입조를 요구하며 다시 고려를 침입하였지만,
 ▶ 1232.12 처인성 전투에서 승려 김윤후가 몽골 장수 살리타이를 사살하자, 몽골군은 철수하였음.

□ 이어진 몽골의 침입과 강화론 대두
 ▶ 1235 몽골은 남송 정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3차 고려 침입을 단행하였음.
 ↘ 남송과의 장기전을 위해 고려의 병력·물자 등을 동원하려는 목적으로 보임.
 - 1236~1251 이 시기 고려는 몽골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팔만대장경을 조판하였음.
 - 1238 한편, 몽골의 침입 과정에서 황룡사 9층 목탑이 소실되었음.
 ↓ 지금 경북 경주에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 형태로 재현한 경주타워와 목탑을 모티브로 건축된 중도타워가 세워져 있음.

 ▶ 1241 고려는 몽골의 요구에 따라 영녕공 왕준을 왕자라고 내세워 볼모로 파견하기도 하였으나,
 ▶ 1247 몽골은 제3대 구육 칸이 즉위한(1246) 이듬해 제4차 침입을 감행하였고,
 ▶ 1253 이후 제4대 뭉케 칸이 즉위(1251) 이후에도 몽골의 고려 침입은 계속되었음.
 ▶ 1254 특히 차라대가 이끄는 제6차 침입이 장기화하면서 고려의 피해는 더욱 심각해졌고,
 ▶ 이에 고려에서는 대몽 항전을 중단하고 몽골과 강화를 맺어야 한다는 강화론이 본격적으로 대두하게 됨.
 - 한편 몽골은 고려에 개경 환도와 국왕의 친조를 비롯하여 호구 조사, 역참 설치, 군대와 양곡 제공, 다루가치와 독로화의 파견 등을 요구하였음.

□ 최씨 정권 붕괴와 몽골과의 강화
 - 1258년 3월 김준 등이 최의를 살해하면서 최씨 무신정권이 종식되었고, 
 ▶ 1258.12 같은 시기 몽골은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여 함경남도 일대를 직접 지배하기 시작하였음.
 ▶ 1259년 이후 태자 왕전(원종)이 몽골에 입조하여 쿠빌라이와 교섭하면서 고려와 몽골 사이에 강화가 성립되었음. 
 ▶ 그러나 강화 성립 이후에도 김준·임연 등 무신집권자들이 계속 권력을 장악하면서 개경 환도가 지연되었고, 이에 따라 몽골과의 관계 역시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졌음.

■ 이후
□ 원종 폐위 사건과 무신정권의 종식
 ▶ 1269 임연이 원종을 폐위하고 원종의 동생인 왕창을 왕으로 옹립하였음.
 ▶ 그러나 세자 왕심(훗날 충렬왕)이 몽골에 군사 지원을 요청하자 몽골이 개입하여 원종이 복위하였고,
 ▶ 1270년 5월 이후 임연의 아들 임유무가 살해되면서 무신정권은 종식되었음. 

 - 1269 한편, 원종 폐위 사건 당시 최탄이 서경(지금의 평양)과 북계 지역을 가지고 몽골에 투항하였고, 몽골은 이 지역에 동녕부를 설치하였음(1270).

□ 개경 환도와 삼별초 항쟁
 ▶ 1270.5 원종은 몽골의 요구에 따라 개경으로 환도하고 삼별초의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 1270.6 배중손·노영희 등은 왕족인 왕온을 왕으로 세우고 고려 조정과 몽골에 맞서 항쟁을 시작하였음. 
 ▶ 1273 이후 고려·몽골 연합군이 제주도를 공격해 삼별초를 격파하면서 항쟁이 종식되었으며,
 ▶ 몽골은 제주도를 직접 지배하기 위해 탐라국초토사를 설치한 뒤 탐라총관부로 개편하였음.

고려-몽골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