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몽골 전쟁
□ 몽골 침입에 대한 고려의 대응
▶ 1231년 몽골의
첫 침입 이후 고려는
화친을 맺어 몽골군이 철수하게 하였음.
▶ 1232
최우는 몽골과의 항전을 위해 강화도로 천도하고, 백성들을 산성이나
섬으로 이동시켜 항전하는 해도·산성 입보 전략을 추진하였음.
↓ 아마도... 최우는 불리한 상황에서 맺은 화친
이후 이어진 몽골의 압박과, 그로 인한 무신정권의 입지 약화를 막기
위해 강화도 천도를 선택한 것으로 보임.
▶ 이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몽골군은 개경과 서경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주변 지역에 대한 약탈을 이어갔음.
□ 최씨 무신정권 붕괴 이후의 정세
▶ 1258.3 대몽
항전을 주도하던
최씨 무신정권이
무너지자 고려는 몽골과 강화를 추진하였으나,
- 몽골군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북방 지역민의
이탈을 부추기는 등 고려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였음.
■ 쌍성총관부 설치
□ 북방 지역의 반란과 쌍성총관부 설치
▶ 1258.5 박주(현
평안북도 박천) 주민들이 몽골에 투항하면서 북방 지역의 반란이
본격화되었음.
▶ 1258.9
이어 광복산성(현 강원도 이천)에서도 몽골 투항이 이어졌으며,
▶ 1258.12
동북면 15개 주현 주민들이 모여 있던 죽도에서도 조휘·탁청이
지방관들을 제거한 뒤 몽골군에 투항하였음.
▶ 이를 계기로 몽골은 동북면에 쌍성총관부(현 함경남도 영흥
일대)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 탁청을 천호로 임명한 뒤 다루가치를
배치하여 해당 지역을 통제하기 시작하였음.
↘ 이 시기 전후로 훗날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선조인
이안사도 몽골에 귀부해 동북면에 기반을 마련하였고, 이후 이자춘
대에 이르러 가문의 영향력이 커졌음.
▶ 이후 쌍성총관부는 원의 동북 지역 지배
거점으로 기능하게 됨.
■ 쌍성총관부 수복
□ 공민왕의 반원 개혁 정치
- 1351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원나라가 혼란해지자,
▶ 1356.5 공민왕은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제거하고
반원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유인우에게 군사를 주어 쌍성총관부를 공격하게
하였음.
- 이 과정에서 이자춘이 고려군에 협력하면서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음.
↘ 이자춘은 공민왕을 만나 고려에 귀의할 뜻을 밝힌
뒤(1355) 쌍성총관부 수복에
협력하였고, 이를 계기로 가문의 정치적 기반을 넓히게 됨.
▶ 이후 고려는 옛 쌍성총관부 관할 지역을 회복하고 동북
방면으로 세력을 넓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