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신라 건국

서라벌, 사로국
삼국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57년에 건국함.

박혁거세가 사로국을 건국하고 진한 소국들의 통합을 시작함.
이어 경상도 동부·중부로 세력을 넓히며 진한 사회를 사로국 중심으로 통합했고,
이후 진한을 완전히 통합하고 국호를 ‘신라’로 변경함.

신라 건국

■ 배경
 ▶ BCE 108 한반도 북부의 고조선이 멸망하고 한사군이 설치되자,
 ▶ 남부에는 여러 소국이 모인 진한(낙동강 동쪽)과 마한(충청·전라 중심), 변한(낙동강 하류) 연맹체가 형성됨.

■ 사로국 성립
 ▶ 기원전 57년 경주 지역의 여섯 촌락에 박씨·석씨·김씨 집단이 이주해 서로 우위를 다투다, 박혁거세가 사로국을 건국함. 
 - 경주 분지는 사방이 열려 있는 교통 요지이자 철 생산지와 가까웠으나, 한반도 동남쪽 끝에 위치해 선진 문화 수용에는 불리했음.

 - BCE 37 주몽이 압록강 중류 지역에서 고구려를 건국함.
 - BCE 18 온조가 한강 남쪽 지역에서 백제를 건국함.

□ 동남 해안 정복
 ▶ 1C 무렵 사로국은 울산과 부산 등 동남 해안을 정복하며 세력을 넓혀 진한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함.

□ 월성 축조
 ▶ 101 5. 파사이사금은 경주에 월성을 축조하여 지배층의 거처이자 방어 시설로 삼았고,
 - 주변에 여러 토성을 축조하여 왕성인 월성을 보조하고 남당회의를 열거나 외적 침입을 방어하는 시설로 활용함.
 ↘ 고고학적 견해에 따르면 월성은 늦은 3세기에 축조가 이뤄졌다고 봄.

 ▶ 2C 무렵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한반도 남부와 동북부의 세력은 점차 성장하여 한 나라의 군현을 위협하기에 이름.

□ 내륙 진출
 ▶ 3C 이전까지 사로국은 금관가야와 영남 지역 교역권을 놓고 경쟁했으나,
 ▶ 이후 다벌국·압독국·소문국 등 내륙 세력을 차례로 흡수하고 낙동강 서쪽과 경주 일대를 통합하며 국가 기반을 강화했음.
 ▶ 3C 말 이후 낙동강 동쪽에서 금관가야의 영향력을 밀어내고 경상도 동부와 중부 대부분을 장악하며 우위를 확보함. 
 ↘ 고고학적 견해에 따르면 사로국의 해안 정복과 내륙 진출은 3~4세기에 이루어졌으며, 사로국이 신라로 발전한 시기는 4세기 전반으로 봄.

■ 국호를 ‘신라’로 사용
 ▶ 4세기 후반 사로국은 ‘신라’라는 국명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군주 칭호도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변화했음. 
 ↘ 382년 신라 사신이 중국 전진의 황제를 만났을 때 ‘신라’라는 국호를 사용했으며, 이후 503년 지증왕 때 이를 공식 국호로 제정함.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신라 건국]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