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나제동맹
- 4C 신라는
내물마립간 대부터
고구려의 간섭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 433
눌지마립간 대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으면서
고구려의 침입을 받게 됨.
▶ 475
나제동맹 초기에는 고구려가 백제 공격에 집중했지만, 한성 함락
이후에는 신라를 주된 공격 대상으로 삼음.
■ 재위 기간
▶ 479년 자비마립간이 세상을 떠나고, 소지마립간이
즉위함.
▶ 480
고구려는 말갈을 동원해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했고,
▶ 481
이어 말갈과 연합해 신라 북쪽 변경의 일곱 성을 빼앗고 미질부(현재의
경북 포항 흥해)까지 침입하였음.
▶ 이에 백제와 가야가
구원군을 파견하여 고구려의 공격을 막아냈음.
□ 신궁 설치
▶ 487 김씨 시조 김알지를 모신 것으로 보이는 신궁을 세워 왕실의
권위를 강화함.
↘ 신라에는 박혁거세를 모신 시조묘도 존재
□ 중앙의 지배력 확장
▶ 487 우역을 설치하고 관도를 정비하여 중앙과 지방의 통신·행정
체계를 강화하였음.
- 이를 통해 지방 통치를 직접적으로 관리하며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화를 추진함.
□ 사금갑 설화
▶ 488 소지마립간이
신비한 계시를 받아 거문고 갑을 쏘자 궁중의 간통이 드러난
이야기로,
- 이는 불교가 확산되던 시기에
토착신앙과 귀족 세력이 불교 세력을 견제한 갈등을 상징하며,
일부에서는 고구려의 첩자 사건으로도 해석함.
□ 혼인 동맹 및 대외 관계
▶ 493년 백제 동성왕의
혼인 제안을 받아들여,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내
혼인시켰음.
- 같은 해, 왜의 잦은 침입에 대비하여 임해진과
장령진을 설치함.
▶ 494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위기에 처한 신라 장수를 백제가 구원하였고,
▶ 495
이듬해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자, 신라는 구원군을 보냄.
□ 소지마립간의 아들
▶ 500 소지마립간이
날이군에 행차했을 때 파로가 딸 벽화를 왕에게 바쳤으며,
- 이듬해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지만, 소지마립간이 사망한 뒤 그 아들에
대한 기록은 사라짐.
■ 사후
▶ 500년 11월
소지마립간이 세상을 떠나고 지증왕이 즉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