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백제 26대 성왕

명농, 명, 25대 무령왕의 아들, 27대 위덕왕의 아버지
523년부터 554년까지 약 32년 동안 왕위에 있었음.

성왕은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고, 22부사제·왕도 5부제·방군성체제 등으로 중앙·지방 통치를 재편했음.
불교를 국가 통치에 적극 활용해 교단을 정비하고, 왜에 불교를 전했음.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 유역을 되찾았으나, 곧 신라의 기습으로 한강 하류 지역을 빼앗기고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함.

성왕

■ 즉위 이전
 ▶ 501 무령왕이 즉위하여 백제 중흥의 기반을 마련하고,
 ▶ 이 시기에 성왕이 태어났음.

■ 재위 기간
 ▶ 523 무령왕이 세상을 떠나고, 성왕이 즉위함.

□ 불교 활용
 ▶ 526 승려 겸익이 인도에서 ‘율부’를 공부하고 돌아와 성왕의 지원 아래 흥륜사에서 경전을 번역하며 백제 불교를 계율 중심으로 발전시킴.
 ↘ 율부는 불교 경전 삼장(경장, 율장, 논장) 중 하나로, 승려와 교단이 지켜야 할 계율과 규범을 모아놓은 경전

□ 사비 천도
 ▶ 538년 웅진(오늘날 충남 공주)에서 사비(오늘날 충남 부여)로 천도를 단행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꿈. 
 - 웅진은 지리적으로 협소하여 발전에 한계가 있었던 반면, 사비는 방어에 유리하고 평야가 넓게 발달했으며 서해에 진출하기에도 유리했음.
 - 또한, 성왕은 기존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세력을 등용함으로써 귀족들의 권력을 분산시키고자 하였음.

□ 국가 체제 정비
 - 백제의 관등제는 8대 고이왕이 260년경에 처음 시행하였으며, 성왕 대에 이르러 완전히 정착됨.
 ↘ 관리의 등급과 서열을 구분하여 중앙의 관료 체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행정 기관인 22부사제를 완비함. 
 - 수도인 사비성을 5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귀족과 지배세력을 구역별로 통제한 왕도 5부제를 시행함.
 - 22담로제(왕족 파견)를 대신해 방군성체제를 시행하여 지방까지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함. 
 ↘ 전국을 동·서·남·북·중의 5방으로 나누고, 그 아래 37군과 200여 성을 두고 각각 지방관을 파견함.

 ▶ 541 성왕은 양 무제에게 유학자 육후와 불교 경전, 기술자·화가의 파견을 요청하였으며,
 - 이에 육후는 10여 년간 백제에 머물며 유교적 이념으로 성왕의 왕권 강화를 뒷받침하였음.

□ 한강 유역 장악
 - 성왕은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여러 차례 고구려와 전쟁을 벌였지만 실패하였고,
 - 가야에 진출하려 했으나, 신라의 영향력이 강해 뜻을 이루지 못했음.
 ▶ 545 한편 고구려에서는 23대 안원왕이 피살되고 24대 양원왕이 즉위하면서 내분이 일어났음.
 ▶ 551년 이를 기회로 성왕은 신라 진흥왕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고, 그 결과 한강 유역을 되찾는 데 성공함. 
 - 이때 백제는 한강 하류의 6개 군을, 신라는 상류의 10개 군을 차지함.

□ 왜에 불교를 전래
 ▶ 552 성왕은 노리사치계를 왜에 보내 불교를 전하게 하여, 일본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되는 계기를 마련함.
 ↘ 538년에 왜에 불교를 전래했다는 기록도 있음.

□ 관산성 전투
 ▶ 553 신라 진흥왕은 한강 하류의 백제 지역을 기습 점령했고,
 ▶ 554 이에 성왕은 신라의 배신에 복수하기 위해 태자 여창을 선발대로 보내 관산성(오늘날 충북 옥천)을 공격하게 하였음.
 ▶ 성왕은 태자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밤에 50명의 군사와 함께 길을 나섰다가, 구천에서 신라의 복병을 만나 전투 끝에 전사함. 

■ 사후
 ▶ 왕이 전사한 백제는 관산성 전투에서 크게 패하였으며, 성왕의 시신은 신라에 의해 훼손된 상태로 백제로 돌아오게 됨.
 ▶ 544 이후, 27대 위덕왕이 즉위함.




# 참고 자료
[성왕]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