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501
무령왕이 즉위하여 백제
중흥의 기반을 마련하고,
▶ 이 시기에 성왕이 태어났음.
■ 재위 기간
▶ 523 무령왕이
세상을 떠나고, 성왕이 즉위함.
□ 불교 활용
▶ 526 승려 겸익이
인도에서 ‘율부’를 공부하고 돌아와 성왕의 지원 아래 흥륜사에서 경전을
번역하며 백제 불교를 계율 중심으로 발전시킴.
↘ 율부는 불교 경전 삼장(경장, 율장, 논장) 중
하나로, 승려와 교단이 지켜야 할 계율과 규범을 모아놓은 경전
□ 사비 천도
▶ 538년 웅진(오늘날 충남 공주)에서 사비(오늘날 충남 부여)로 천도를
단행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꿈.
- 웅진은 지리적으로 협소하여 발전에 한계가
있었던 반면, 사비는 방어에 유리하고 평야가 넓게 발달했으며 서해에
진출하기에도 유리했음.
- 또한, 성왕은 기존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세력을 등용함으로써 귀족들의 권력을
분산시키고자 하였음.
□ 국가 체제 정비
- 백제의 관등제는
8대 고이왕이 260년경에
처음 시행하였으며, 성왕 대에 이르러 완전히 정착됨.
↘ 관리의 등급과 서열을 구분하여 중앙의 관료
체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행정 기관인 22부사제를
완비함.
- 수도인 사비성을 5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귀족과
지배세력을 구역별로 통제한 왕도 5부제를 시행함.
- 22담로제(왕족
파견)를 대신해 방군성체제를 시행하여 지방까지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함.
↘ 전국을 동·서·남·북·중의 5방으로 나누고, 그
아래 37군과 200여 성을 두고 각각 지방관을 파견함.
▶ 541 성왕은
양 무제에게 유학자 육후와 불교 경전, 기술자·화가의 파견을
요청하였으며,
- 이에 육후는 10여 년간 백제에
머물며 유교적 이념으로 성왕의 왕권 강화를 뒷받침하였음.
□ 한강 유역 장악
- 성왕은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여러 차례
고구려와 전쟁을 벌였지만 실패하였고,
- 가야에
진출하려 했으나, 신라의 영향력이 강해 뜻을 이루지 못했음.
▶ 545
한편 고구려에서는 23대 안원왕이 피살되고 24대 양원왕이 즉위하면서
내분이 일어났음.
▶ 551년 이를 기회로 성왕은
신라 진흥왕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고, 그 결과 한강 유역을 되찾는 데
성공함.
- 이때 백제는 한강 하류의 6개 군을, 신라는
상류의 10개 군을 차지함.
□ 왜에 불교를 전래
▶ 552 성왕은
노리사치계를 왜에 보내 불교를 전하게 하여, 일본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되는 계기를 마련함.
↘ 538년에 왜에 불교를 전래했다는 기록도
있음.
□ 관산성 전투
▶ 553 신라
진흥왕은 한강 하류의 백제 지역을 기습 점령했고,
▶ 554
이에 성왕은 신라의 배신에 복수하기 위해 태자 여창을 선발대로 보내
관산성(오늘날 충북 옥천)을 공격하게 하였음.
▶ 성왕은 태자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밤에 50명의 군사와 함께
길을 나섰다가, 구천에서 신라의 복병을 만나 전투 끝에
전사함.
■ 사후
▶ 왕이
전사한 백제는 관산성 전투에서 크게 패하였으며, 성왕의 시신은 신라에
의해 훼손된 상태로 백제로 돌아오게 됨.
▶ 544
이후, 27대 위덕왕이 즉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