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삼별초의 형성과 역할
▶ 1220s 최우는
개경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야별초를 조직했고, 이후 야별초는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뉘었음.
▶ 1231년
몽골의 침략이 시작된
뒤에는
▶ 몽골에 포로로 잡혔다 돌아온 군인들로 구성된
신의군이 더해져 삼별초가 형성되었고,
▶ 이후 대몽
항쟁과 무신정권의 핵심 군사력으로 활동했음.
□ 개경 환도를 둘러싼 원종과 무신정권의 갈등
▶ 1259년 몽골의 침입이 약 30년간 이어진 끝에 고려는 몽골과 강화를
맺었고,
▶ 원종은 몽골의 요구에 따라 개경 환도를 추진했음.
▶ 그러나
강화도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하던 무신집권자들은 개경 환도로
자신들의 군사·정치적 기반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 이에 반대했음.
▶ 1269
결국 임연은 원종을 폐위했으나(원종 폐위 사건), 몽골의 개입으로
원종은 다시 왕위에 올랐음.
▶ 1270.5 이후 임유무가 제거되면서 무신정권이 끝났고, 개경 환도가
결정되었음.
■ 삼별초의 저항
□ 항쟁의 시작
▶ 1270.5 고려 조정이 개경 환도 날짜를 확정하자, 대몽 항쟁의
주력군이었던 삼별초는 이에 반발하며 환도 명령을 따르지
않았음.
▶ 1270.5 이에
원종이 삼별초의 혁파 및 명부 압수를 결정하자,
↓ 삼별초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명부가 몽골에
넘어갈 경우 보복의 위험이 있음.
▶ 1270.6 배중손과
노영희 등은 승화후 왕온(현종의 후손)을 왕으로 세우고 관부를 설치한 뒤, 사람과 물자를 모아 1천여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였음.
□ 진도를 중심으로 세력 확대
▶ 1270.8 삼별초는 서남해 해상교통의 요지인 진도에 도착해 근거지로
삼고, 용장성을 중심으로 성곽과 궁전을 마련하며 장기 항쟁의 기반을
구축하였음.
↓ 진도 용장성(용장산성)은 사적 제12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성벽과 궁궐터 등이 남아있음.
▶ 이후 서남해안에서 김해·제주에 이르는 지역으로
영향력을 넓혔으며, 일본에 외교문서를 보내 몽골에 맞선 연대를
모색하였음.
- 또한, 진도 항쟁 중 제주도를 미리
장악하여 배후 거점으로 삼았음.
□ 고려·몽골 연합군의 공격과 진도 함락
▶ 1270.11
고려·몽골 연합군은 진도의 삼별초를 공격했으나 첫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 이후 병력과 군선을 대규모로 모아 다시
공격에 나섰음.
▶ 1271.5
연합군이 여러 방향에서 진도를 공격하자 삼별초는 용장성을 비롯한 주요
거점을 잃었으며, 이 과정에서 왕온이 전사하면서 진도 항쟁이
끝났음.
□ 제주에서 재정비와 해상 활동
▶ 진도에서 패한 삼별초는 김통정의 지휘 아래 제주도로 이동해
항파두성(지금의 제주 애월읍 지역)을 중심으로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다시 세력을 정비하였음.
↓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항파두성)은 사적
제396호로 지정되어 있음.
▶ 이후 남해와 서해 연안으로 진출하여 해상 활동을
이어가며 고려·몽골 측의 교통과 연안 지역을 위협하였음.
□ 고려·몽골 연합군의 공격과 항쟁 종결
▶ 1273.2 고려
조정의 회유가 실패하자 고려와 몽골은 대규모 연합군을 편성해 제주
공격을 준비하였음.
▶ 1273.4 고려·몽골 연합군은 제주를 공격해 삼별초의 주력군을
무너뜨렸고,
▶ 1273.윤6 이후
김통정까지 사망하면서 항쟁은 끝나게 됨.
↓ 제주에선 삼별초의 항몽 역사를 되새기는
‘항파두리 역사문화제’가 매년 하반기에 열리며, 토성 탐방과
전통공연·승마·활쏘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개최하고
있음.
■ 이후
▶ 몽골은
삼별초 진압 직후 제주에 탐라국초토사를 설치하였고,
▶ 이후
탐라총관부로 개편하여 제주를 직접 관리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