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삼백산업의 발달


1950년대

삼백산업은 미국의 무상원조와 정부의 특혜 정책에 힘입어 성장했지만,
무상원조 축소와 4.19 이후의 비판 여론으로 위기를 맞았고, 이후 기업들은 해외시장 개척에 나섬.


밀가루, 설탕, 면직물이 모두 흰색이어서 삼백산업이라고 부름.

삼백산업의 발달

■ 1950년대 초반
□ 미국의 무상원조
 ▶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고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원조를 확대했음. 
 - 이러한 무상원조는, 농산물의 판매 수익을 한국 정부가 국방비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함으로써 군사 안보를 강화하려는 외교 전략이자,
 - 동시에 미국 내 농산물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제적 목적도 함께 담고 있었음.

□ 전후의 한국 경제
 - 6.25 전쟁 이후 산업 기반이 무너지고 외화와 물자가 부족했던 한국은, 미국의 원조 물자를 활용해 당장 필요한 소비재를 생산할 수 있는 산업에 집중했음.
 - 특히 국방 예산의 상당 부분을 원조 농산물 판매 수익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이들 원자재를 효율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음.

 ▶ 미국이 원조한 밀, 원료용 설탕, 원료용 면화를 원료로 하는 삼백산업이 형성됨.

■ 삼백산업의 성장
□ 정부의 특혜
 - 삼백산업 사업자들은 외국산 생산 설비를 도입할 때, 정부가 대신 달러로 결제해주고 이들은 낮은 환율과 저금리 융자 조건으로 원화를 지급하는 방식의 특혜를 받았음.
 - 또한 밀, 원면, 원당 등 원조 원료를 실수요자 자격으로 우선 배정받았으며, 낮은 환율과 외상 또는 융자 조건을 통해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었음.
 - 더불어 정부는 수입 관세와 물품세를 인상해 국내 시장을 보호함으로써, 삼백산업이 외부 경쟁 없이 시장을 장악하고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했음. 

 ▶ 삼백산업은 미국 원조와 정부의 특혜에 힘입어 성장함.
 - 그러나 경쟁이 거의 없는 보호 환경에서 생산성보다는 생산량 확대에 집중했고, 설비 규모에 따라 원료와 자금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과잉 설비임에도 계속 증설했음.
 ↘ 1954년부터 1959년까지 밀가루 소비는 2배 늘었지만, 제분 시설은 45배나 확대됨

□ 삼백산업의 위기
 ▶ 1957 미국의 무상원조 축소와 함께 환율 특혜와 실수요자 우선 배분 특권이 사라졌으며, 
 ▶ 1960 이어진 4.19 혁명으로 특혜 기업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삼백산업은 사회적으로도 큰 위기를 맞음.

■ 산업구조의 전환
 ▶ 이러한 상황에서 삼백산업은 수요 정체와 자금 압박으로 인해 도산이나 합병이 잇따랐음.
 ▶ 이에 따라 기업들은 미국 원조에 의존하는 대신 해외 민간자본을 유치하고, 협소한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섬. 

 ▶ 이러한 변화는 이후 외국 자본 유입을 기반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흐름을 형성함.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고등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삼백산업]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