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579 25대
진지왕이 폐위되고, 조카인
26대 진평왕이 즉위하여
직계 후손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움.
▶ 603
진지왕의 아들 김용춘과 선덕여왕의 동생인 천명부인 김씨 사이에서
김춘추가 태어남.
□ 대야성 전투 패배
▶ 632 진평왕이
세상을 떠나고,
27대 선덕여왕
즉위함.
▶ 김춘추는 능력과 배경을 바탕으로 상당한
정치적 지위에 올랐고, 김유신의 여동생과 결혼하며 김유신과
가까워짐.
▶ 642년 백제 의자왕의
공격으로 신라는 낙동강 서쪽 40여 성과
대야성을 잃음.
- 이에 선덕여왕과 정국을 이끌던 김춘추·김유신
등 신흥 귀족 세력은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 김춘추는
대야성을 지키던 사위와 함께 자기 딸까지 잃음.
□ 김춘추의 외교 시도
▶ 642 겨울
김춘추는 백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먼저 고구려와 군사 동맹을
추진했지만 거절당했고,
- 연개소문의 압력 속에서
억류될 위기에 놓였지만, 김유신의 지원과 자신의 기지로 탈출해
귀국함.
▶ 643.9 이후
당에 군사 동맹을 요청했으나 태종의 승인을 얻지 못했으며,
▶ 647
백제와 가까운 왜에도 협력을 타진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
□ 비담의 난
▶ 김춘추의 외교가 연달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반대
귀족들의 압박은 더 거세졌고,
▶ 647.1
결국 상대등 비담이 반란을 일으킴.
▶ 647
선덕여왕이 세상을 떠나고, 김춘추는 28대 진덕여왕을 즉위시켰음.
▶ 이어 김유신의 군사적 지원을 토대로 비담의 난을 진압하고
반대 세력을 제압하며 내부 권력을 장악함.
□ 당과 군사 동맹 체결
- 당 태종이 고구려 원정(645)에 실패하며 대고구려전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이 되자,
▶ 648년
김춘추는 직접 당으로 건너가 태종과 군사 동맹을 본격적으로 논의했고
마침내 그의 동의를 얻어냈음.
▶ 649
이후 당 태종이 세상을 떠나고 고종이 즉위하면서 당의 정세가
변했지만,
▶ 650
김춘추의 적극적인 외교로 신라–당 군사 동맹은 더욱 굳건해졌음.
■ 재위 기간
▶ 654년 3월 진덕여왕이 세상을 떠나고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김춘추가 진골
최초로 왕위에 오름.
↘ 신라 중대 왕실의 시작
▶ 655.1 고구려가
백제·말갈과 연합해 신라 북방을 공격하고 33 성을 빼앗자, 무열왕은
당에 원군 파견을 요청했고, 당은 이에 응해 고구려를 공격함.
□ 왕권 중심의 권력 구조를 확립
▶ 무열왕은 즉위 직후 부친과 모친을 문흥대왕과
문정태후로 추봉해 왕통의 정통성을 다졌고,
▶ 655.3
장남을 태자로 책봉해 안정적인 계승 체제를 마련했음.
- 다른
아들들 역시 고위 관직에 등용해 왕실 중심의 권력 구조를
강화했으며,
▶ 655.10
딸(지소부인)을 김유신과 혼인시켜 중첩된 혼인 관계를 통해 정치적
연대를 더 굳힘.
▶ 658
또한 셋째 아들 문왕을 집사부 중시에 임명해 내부 정치 운영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마련함.
□ 삼국 통일 전쟁의 시작
▶ 659.4 삼국 통일
전쟁의 준비를 마친 무열왕은 백제 정벌을 위해 당에 공식적으로 원군을
요청했고,
▶ 660 이어
김유신을 상대등에 임명함.
▶ 660 무열왕이 직접 이끄는 신라군과 소정방이 지휘하는 당군이 함께
백제 정벌에 나섰음.
▶ 660.7 계백의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완강히 신라군에 맞섰지만 패배했고,
▶ 660년 7월
신라군은 사비도성 아래에 집결한 당군과 합류해 결국
의자왕의 항복을
받아냈음.
- 무열왕은 딸과 사위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배신자 모척과 검일을 처형하며 개인적 원한도 갚음.
▶ 660.8 >
이후 백제 유민들이 곳곳에서
백제 부흥운동을
전개함.
▶ 660.11
백제 원정을 마친 무열왕은 왕경으로 돌아와 항복한 백제 관리들에게도
능력에 따라 관등과 관직을 부여하며 안정적 통합을 도모했음.
■ 사후
▶ 661년 6월
태종 무열왕이 세상을 떠난 뒤 문무왕이 즉위했으며,
- 경주
영경사 북쪽에 능( 경주 무열왕릉 , 사적 제20호)을 조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