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문벌 귀족의 대립과 전시과 체제의 붕괴
- 12C
고려에서는
이자겸의 난과
서경 천도 운동 등을
통해 지배층 내부의 대립이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왕권이
약화되었음.
- 또한 문벌 귀족이 토지와 권력을
독점하면서 전시과 운영이
어려워졌고, 그 결과 군인전이 부족해져 군인들의 경제적 불만이
커졌음.
□ 무신에 대한 차별과 천대
- 고려에서 무관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직은
정3품 상장군이었으며, 병권과 주요 군사지휘권도 주로 문관이 차지하고
있었음.
- 또한
과거제에 무과가
없었으며,
제16대 예종 때 마련된
무학 교육이
제17대 인종 때 폐지되어
무신들이 능력을 통해 관직에 진출할 기회가 제한되었고, 일반 병사에서
출세한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무반 전체가 천시받는 경향이 있었음.
□ 의종 재위 기간
▶ 제18대 의종은
재위 중반 이후 정치에 소홀해진 채 측근 문신들과 연회와 유흥을
즐겼지만, 무신과 군인들은 급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별궁과 정자를
짓는 공사에 동원되었음.
▶ 1167
또한 김돈중이 탄 말이 군인의 화살통과 부딪치면서 화살이 의종의 수레
곁에 떨어진 일이 있었는데, 이를 암살 시도로 오해한 의종은 호위를
맡은 친위군 장교들을 귀양 보내 무신들의 불만을 더욱 키웠음.
■ 무신정변
□ 무신들의 불만과 정변의 시작
▶ 1170.4 의종이
문신들과 연회를 즐기는 동안, 왕을 호종하던 무신과 군인들은 굶주림에
시달렸음.
▶ 이에 이의방과 이고는 정중부와 함께
정변을 결심하였고,
↘ 당시 정중부는 정3품의 상장군이었고, 이고와
이의방은 정8품의 산원이었음. 정중부는 고위 무신으로서 권위와
영향력이 있었고, 이고와 이의방은 왕을 가까이에서 호위하며 현장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
▶ 1170.8 이후
의종의 행차가 연복정과 흥왕사를 거쳐 보현원으로 향하자, 정중부는
이의방과 이고에게 보현원에 도착하면 정변을 실행하라고 지시하였음.
□ 보현원 거사와 개경 장악
▶ 1170.8.30 의종은
보현원으로 향하던 중 오문에서 무신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무술
시합을 열었음.
- 그러나 시합에서 패한 대장군 이소응이 문신 한뢰에게 뺨을
맞고 왕과 문신들에게 조롱당하자, 정중부를 비롯한 무신들은 크게
분노하며 정변을 결행할 뜻을 굳혔음.
▶ 1170.8.30 날이 저물어 의종의 행차가 보현원 문 앞에 이르자, 이고와
이의방은 보현원에서 순검을 집합시킨 뒤 임종식·이복기·한뢰를 비롯한
문신과 환관들을 살해했으며,
▶ 1170.8.30 이후
김돈중이 개경으로 달아났다는 사실을 알고 급히 도성으로 돌아가 궁궐과
태자궁을 점령하고 고위 문신 50여 명을 살해한 뒤 의종을
환궁시켰음.
□ 무신들의 왕위 교체
▶ 1170.9.1 의종의
측근 환관들이 정중부 등을 토벌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무신들은
내시와 환관 20여 명을 살해했음.
▶ 이후 의종과 태자를
각각 군기감과 영은관에 가두었다가
▶ 1170.9.2 의종과 태자를 거제와 진도로 추방하고, 의종의 동생을 왕위에
올렸음.
■ 이후
□ 무신정권의 성립
▶ 1170.9.2 명종은
즉위 당일 정중부·양숙·이소응 등을 기존 무신의 최고 관직보다 높은
관직에 임명하고,
- 하급 무신이었던
이고·이의방·채원도 대장군과 장군으로 승진시켰음.
▶ 1170.10
이어 의종 대에 처벌받은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사면하고,
- 정중부·이의방·이고를
벽상공신으로, 양숙과 채원을 2등 공신으로 책봉하였음.
▶ 무신들은
자신들의 합좌 기구인 중방을 최고 권력 기구로 격상시켜 국정 운영을
주도하였음.
↘ 중방은 2군 6위의 상장군과 대장군으로 구성된
회의 기구로, 본래 궁궐과 도성의 수비·치안을 담당하였음.
▶ 이로써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하며 약 100년간 이어지는
무신정권 시대가 시작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