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433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었고,
▶ 461
이어 개로왕은 곤지를
왜국에 파견하여 우호 관계를 강화하고 군사적 협력을 도모하였음.
↘ 곤지는 개로왕의 동생 또는 아들로, 동성왕의
아버지임.
□ 웅진 천도
▶ 475 개로왕이
사망하고 한성을 잃은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천도하여 국가 재건을
추진하였고,
▶ 476
왜국에 갔던 곤지가 귀국함.
- 이 시기 동성왕은
여전히 왜국에 머물렀으며, 이후에도 왜와의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였음.
□ 해구의 반란
▶ 477 해구는
곤지를 시해하고 권력을 장악한 뒤, 이어 22대 문주왕까지 시해하고 23대
삼근왕을 옹립함.
▶ 478 이어 해구가 반란을 일으키자, 왕족·귀족·신진 세력이 이에
맞서 연합하였으며,
▶ 동성왕은 축자국의 군사 500명을 이끌고 귀국하여
반란 진압의 중심 세력으로 활약함.
↘ 축자국은 7세기 이전의 일본 규슈 북부 지역을
말함.
■ 재위 기간
▶ 479년 지지 세력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동성왕은,
- 자신의 즉위를 도운 공신 세력과 웅진 세력,
그리고 왕족을 등용함.
▶ 483~
이후, 신진세력을 좌평에 임명하여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 세력 간
균형을 이루며 왕권 강화를 도모하였음.
▶ 482
고구려가 말갈 병력을 동원해 백제의 한산성을 공격하자,
▶ 483
이듬해 동성왕은 직접 한산성을 찾아 군사와 백성을 위로하며, 옛 한성
지역의 회복을 도모하였음.
↘ 한산성은 한성(서울)과 가까운 군사적 요충지로
추정됨.
□ 도성 정비·지방 통치 강화
▶ 동성왕은 임류각 등을 세워 왕도의 위엄을
높이고,
- 왕성 주변에 성을 쌓아 신진세력을
배치하여 지방통치를 보완함(왕후제 실시?).
□ 나제동맹 강화
▶ 493년 동성왕은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고 이벌찬의 딸과
혼인하여 나제동맹을 더욱 공고히 했음.
- 이 혼인 동맹은 대외적으로 고구려의 남진을
견제하고, 대내적으로 왕비족의 세력 확장을 막는 효과를 거둠.
□ 재위 후반기
▶ 497~ 동성왕은 측근 정치로 권력을 집중하며 자연재해에도 백성을
구휼하지 않았고,
▶ 이어 사비 천도를 추진하면서 반대 세력과의 마찰이
심화되자, 반대파 핵심 인물인 백가를 좌천시켰음.
↘ 동성왕은 490년과 501년 사비에서 몇 차례 수렵을
하며 사비를 천도 후보지로 주목하였음.
▶ 501 이에 불만을
품은 백가는 자객을 보내 동성왕을 시해함.
■ 사후
▶ 501
동성왕이 시해된 후, 형(?)인 무령왕이 즉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