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백제 24대 동성왕

모대, 21대 개로왕의 조카(?), 25대 무령왕의 동생(?)
479년부터 501년까지 약 23년 동안 왕위에 있었음.

해구의 반란을 진압한 뒤 동성왕이 즉위하였음.
좌평 등 신진 세력을 등용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혼인을 통해 나제동맹을 더욱 공고히 했지만,
측근 정치에 빠지면서 반대 세력에 의해 시해됨.

동성왕

■ 배경
 ▶ 433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었고,
 ▶ 461 이어 개로왕은 곤지를 왜국에 파견하여 우호 관계를 강화하고 군사적 협력을 도모하였음.
 ↘ 곤지는 개로왕의 동생 또는 아들로, 동성왕의 아버지임.

□ 웅진 천도
 ▶ 475 개로왕이 사망하고 한성을 잃은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천도하여 국가 재건을 추진하였고,
 ▶ 476 왜국에 갔던 곤지가 귀국함.
 - 이 시기 동성왕은 여전히 왜국에 머물렀으며, 이후에도 왜와의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였음.

□ 해구의 반란
 ▶ 477 해구는 곤지를 시해하고 권력을 장악한 뒤, 이어 22대 문주왕까지 시해하고 23대 삼근왕을 옹립함.
 ▶ 478 이어 해구가 반란을 일으키자, 왕족·귀족·신진 세력이 이에 맞서 연합하였으며, 
 ▶ 동성왕은 축자국의 군사 500명을 이끌고 귀국하여 반란 진압의 중심 세력으로 활약함.
 ↘ 축자국은 7세기 이전의 일본 규슈 북부 지역을 말함.

■ 재위 기간
 ▶ 479년 지지 세력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동성왕은, 
 - 자신의 즉위를 도운 공신 세력과 웅진 세력, 그리고 왕족을 등용함.
 ▶ 483~ 이후, 신진세력을 좌평에 임명하여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 세력 간 균형을 이루며 왕권 강화를 도모하였음.

 ▶ 482 고구려가 말갈 병력을 동원해 백제의 한산성을 공격하자,
 ▶ 483 이듬해 동성왕은 직접 한산성을 찾아 군사와 백성을 위로하며, 옛 한성 지역의 회복을 도모하였음.
 ↘ 한산성은 한성(서울)과 가까운 군사적 요충지로 추정됨.

□ 도성 정비·지방 통치 강화
 ▶ 동성왕은 임류각 등을 세워 왕도의 위엄을 높이고,
 - 왕성 주변에 성을 쌓아 신진세력을 배치하여 지방통치를 보완함(왕후제 실시?).

□ 나제동맹 강화
 ▶ 493년 동성왕은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고 이벌찬의 딸과 혼인하여 나제동맹을 더욱 공고히 했음. 
 - 이 혼인 동맹은 대외적으로 고구려의 남진을 견제하고, 대내적으로 왕비족의 세력 확장을 막는 효과를 거둠.

□ 재위 후반기
 ▶ 497~ 동성왕은 측근 정치로 권력을 집중하며 자연재해에도 백성을 구휼하지 않았고, 
 ▶ 이어 사비 천도를 추진하면서 반대 세력과의 마찰이 심화되자, 반대파 핵심 인물인 백가를 좌천시켰음.
 ↘ 동성왕은 490년과 501년 사비에서 몇 차례 수렵을 하며 사비를 천도 후보지로 주목하였음.
 ▶ 501 이에 불만을 품은 백가는 자객을 보내 동성왕을 시해함.

■ 사후
 ▶ 501 동성왕이 시해된 후, 형(?)인 무령왕이 즉위함.




# 참고 자료
[동성왕]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