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대가야 멸망


562년

신라는 율령과 불교를 바탕으로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금관가야를 병합했음.
이에 대가야는 가야국들의 문화적 통합을 시도했으나, 연합과 내부 결속에 실패함.
결국 신라가 대가야를 멸망시키면서, 가야는 역사 무대에서 사라지게 됨.

대가야멸망

■ 이전
□ 신라의 확장
 ▶ 6C 전반 신라는 율령 반포불교 공인으로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 532 김해의 금관국(금관가야)을 정복한 뒤,
 ▶ 540년? 의령의 탁순국까지 병합함.

□ 안라국의 대응
 - 이에 함안의 안라국(아라가야)은 신라의 세력 확장에 위협을 느끼고, 외교적으로 대응함. 
 ▶ 541, 542 안라국을 중심으로 7~8개의 가야국 사절단이 백제를 찾아가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 백제는 당시 고구려에 맞서 가장 중요한 동맹이었던 신라를 적으로 돌릴 수 없었음.

□ 대가야의 대응
 - 고령의 대가야는 가야 제국의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적·문화적 통합을 추진함. 
 ↘ 대가야는 섬진강 일대 영토를 두고 백제와 분쟁 중이었으며, 신라가 금관국을 멸망시키자 백제와 신라 모두를 신뢰할 수 없게 되어 양국과 대립하는 상태에 놓여있었음.
 ▶ 가실왕은 우륵에게 가야금 12곡을 만들게 하는 등 개혁적인 시책을 펼쳤으나, 이러한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음.
 ↘ 12곡은 대가야와 안라국을 중심으로 한 연맹적 통일체를 의미한 것으로 추정됨.
 ▶ 540년대 말? 왕실의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우륵은 대가야의 미래에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신라로 망명함.

□ 관산성 전투
 ▶ 551 백제·신라·가야 연합군은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유역을 탈환하는 데 성공함.
 ↘ 외교적 노력과 내부적 통합이 모두 실패한 가야국은 생존을 위해 백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음.
 ▶ 553 그러나 신라가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 유역 전체를 차지하였고,
 ▶ 554 이에 분노한 백제는 가야와 왜의 연합군을 조직해 관산성 전투를 벌였으나, 성왕이 전사하며 크게 패배하였고,
 - 가야 또한 이 전투에서 상당한 피해를 봄. 

■ 대가야 멸망
 ▶ 550s 신라는 가야를 멸망시키기 위해 행정 구역을 정비하고 낙동강 방면의 군사 기지를 재편하는 등 전쟁 준비에 착수함.
 - 또한, 백제의 가야 지원을 견제하며 대가야와 안라국의 연계를 차단하는 전략을 세웠음.
 ▶ 560년? 이후 신라는 먼저 안라국(아라가야)을 공격해 멸망시켰고,
 ▶ 562년 이어 이사부가 이끄는 신라군의 총공세로 대가야가 무너짐으로써 가야는 정치 세력으로서 완전히 소멸함. 

■ 이후
 ▶ 가야는 신라의 영토로 복속되었고,
 - 가야인들은 백제로 피신하거나 바다 건너 왜로 이동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신라의 주민으로 편입되어 신라인으로서 살아가게 됨.

대가야멸망


# 참고 자료
[대가야 멸망]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