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신라의 확장
▶ 6C 전반 신라는
율령 반포와
불교 공인으로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 532
김해의 금관국(금관가야)을 정복한 뒤,
▶ 540년?
의령의 탁순국까지 병합함.
□ 안라국의 대응
- 이에 함안의 안라국(아라가야)은 신라의 세력 확장에 위협을
느끼고, 외교적으로 대응함.
▶ 541, 542
안라국을 중심으로 7~8개의 가야국 사절단이 백제를 찾아가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 백제는 당시 고구려에 맞서
가장 중요한 동맹이었던
신라를 적으로 돌릴 수 없었음.
□ 대가야의 대응
- 고령의 대가야는 가야 제국의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적·문화적 통합을 추진함.
↘ 대가야는 섬진강 일대 영토를 두고 백제와 분쟁
중이었으며, 신라가 금관국을 멸망시키자 백제와 신라 모두를 신뢰할
수 없게 되어 양국과 대립하는 상태에 놓여있었음.
▶ 가실왕은 우륵에게 가야금 12곡을 만들게 하는 등
개혁적인 시책을 펼쳤으나, 이러한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음.
↘ 12곡은 대가야와 안라국을 중심으로 한 연맹적
통일체를 의미한 것으로 추정됨.
▶ 540년대 말?
왕실의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우륵은 대가야의 미래에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신라로 망명함.
□ 관산성 전투
▶ 551
백제·신라·가야 연합군은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유역을 탈환하는 데
성공함.
↘ 외교적 노력과 내부적 통합이 모두 실패한
가야국은 생존을 위해 백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음.
▶ 553 그러나
신라가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 유역 전체를 차지하였고,
▶ 554
이에 분노한 백제는 가야와 왜의 연합군을 조직해
관산성 전투를
벌였으나, 성왕이 전사하며 크게 패배하였고,
- 가야 또한 이 전투에서 상당한 피해를 봄.
■ 대가야 멸망
▶ 550s 신라는
가야를 멸망시키기 위해 행정 구역을 정비하고 낙동강 방면의 군사
기지를 재편하는 등 전쟁 준비에 착수함.
- 또한,
백제의 가야 지원을 견제하며 대가야와 안라국의 연계를 차단하는 전략을
세웠음.
▶ 560년?
이후 신라는 먼저 안라국(아라가야)을 공격해 멸망시켰고,
▶ 562년 이어 이사부가 이끄는 신라군의 총공세로 대가야가
무너짐으로써 가야는 정치 세력으로서 완전히 소멸함.
■ 이후
▶ 가야는
신라의 영토로 복속되었고,
- 가야인들은 백제로
피신하거나 바다 건너 왜로 이동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신라의
주민으로 편입되어 신라인으로서 살아가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