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국학

태학감
682년부터

7세기 신라는 국내외의 위기 속에서 당의 제도를 참고해 국학을 설치하고, 관료 양성을 제도적으로 추진했음.
그러나 9세기에 들어 당 유학이 확대되면서 국학의 위상은 점차 약화됨.

국학

■ 배경
 ▶ 640(선덕여왕 9년)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는 처음으로 당에 유학생을 파견한 것으로 기록됨.

□ 신라의 위기
 ▶ 642 신라는 백제가 대야성 등을 함락하면서 국가적 위기에 빠졌고,
 ▶ 647 이어 상대등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춘추와 김유신은 이를 진압하고 진덕여왕을 추대하였음.
 ▶ 이후 김춘추는 실권을 바탕으로 대내외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지배체제를 구상함.

□ 국학의 시작
 ▶ 648 김춘추는 당과의 군사 동맹을 모색하는 한편 당의 국학에서 유교 교육을 참관하며 유교적 통치질서에 관심을 보였고, 
 ▶ 651년 이를 바탕으로 대사를(국학 관료 2인) 두었음.

 →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660), 이어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668) 신라-당 전쟁(670 >)을 거쳐 삼국 통일을 완성함(676).

■ 국학의 운영
□ 국학 제도 완비
 ▶ 682년 신문왕이 위화부 정비와 국학 설치를 통해 관료 선발과 양성을 제도적으로 완성하였음. 
 - 국학은 ‘논어’와 ‘효경’을 비롯한 유교 경전을 중심으로 교육하였으며,
 - 9년의 교육과정을 두고 15~30세까지 입학을 허용하여 초임 관료 교육과 재교육을 함께 담당하였음.

■ 이후
 - 728 신라는 당에 다시 유학생을 파견함.
 ▶ 국학은 경덕왕(742 >)에 태학감으로 개칭되었다가 혜공왕 대(765 >)에 다시 국학으로 환원되었음.

□ 독서삼품과 시행
 ▶ 788년 독서삼품과가 시행되어 유교 경전 시험을 통해 관료를 선발하였음. 
 - 국학 학생들만 대상으로 하진 않았지만, 국학에서 익힌 유교적 소양이 관료 등용으로 직접 연결되었음을 보여줌.

 ▶ 799 국학생의 녹읍을 지정하여 국학의 재정 기반을 강화함.

□ 국학의 쇠퇴
 ▶ 희강왕, 문성왕 대(836 >) 당 유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국학의 위상은 점차 저하된 것으로 보이며, 
 ▶ 경문왕 대(861 >) 이후 신라는 국학의 명칭을 국자감으로 바꾸고 국자학·태학 등으로 교육 체제를 개편하였음.
 ▶ 889 그러나 원종과 애노의 난을 비롯한 농민 봉기가 잇따르면서 국학은 점차 제 기능을 상실함.




# 참고 자료
[국학]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