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나제동맹의 형성
▶ 427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며 남진을 본격화하자,
▶ 434
위기의식을 느낀 백제는 신라에 화친을 제안하였고, 이는 결국
나제동맹으로 이어짐.
□ 백제의 한강 유역 상실
▶ 474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공격을 요청하자,
▶ 475
이에 대한 보복으로 고구려군이 한성을 포위하였음.
▶ 475
결국 개로왕은 아차성 아래에서 전사하였고, 폐허가 된 도성에서 즉위한
문주왕은 웅진 천도를 결정함.
□ 백제의 정치적 혼란기
▶ 477 해구가 22대
문주왕을 시해하고 23대 삼근왕을 옹립함.
▶ 479
삼근왕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24대 동성왕이 즉위함.
▶ 493
동성왕은 신라 왕녀와 혼인하여 나제동맹을 강화했으나,
▶ 497~
재위 후반에는 측근 정치 때문에 혼란이 커졌고, 사비 천도를 반대한
백가를 좌천시킴.
▶ 501
이에 불만을 품은 백가는 동성왕을 시해하였고, 뒤이어
25대 무령왕이 즉위함.
▶ 무령왕은
백가의 반란을 진압하고 내정을 안정시켜 백제를 다시 강국으로
부흥시킴.
□ 사비 천도 및 한강 유역 수복
▶ 523 무령왕이
세상을 떠난 뒤, 26대 성왕이 즉위하여
▶ 538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으며, 한강 유역의 수복을
추진함.
▶ 551년 백제는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고
- 그 결과 백제는 한강 하류 6개 지역(서쪽)을,
신라는 한강 상류 10개 지역(동쪽)을 각각 차지함.
■ 관산성 전투
□ 나제동맹의 와해
▶ 고구려와 신라는 비밀리에 밀약을 맺음.
- 고구려는
북방의 돌궐 세력과 내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남쪽의 문제를
조속히 정리하고자 하였고, 신라는 중국과의 교통로를 확보하고 평야
지역이 있는 한강 하류를 차지하기를 원했음.
▶ 553년 신라는 백제가 점령하고 있던 한강 하류를 기습
점령함(나제동맹 와해).
▶ 옛 땅을 다시 잃은 백제는 이에 대한 보복을
준비하며 대규모 전쟁을 추진함.
□ 관산성 전투 전반
▶ 554년 왕자 창이
이끄는 백제군은 가야와 왜의 연합군과 함께 관산성을 공격하여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어 갔음.
□ 백제 성왕 전사
▶ 전쟁이 길어지자 백제 성왕은 아들 창(위덕왕)을
위로하기 위해 소수 병력을 이끌고 관산성으로 향했음.
▶ 그러나 백제군과 합류하기도 전에 매복해 있던 신라군에게
발각되어 전사함.
▶ 성왕의 전사 소식이 전해지자 백제군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졌고, 기세가 오른 신라군이 총공세를 펼쳐 대승을 거둠.
■ 이후
- 백제는 위덕왕(왕자 창)이 즉위했지만, 국력은
예전만 못했음.
- 신라는 한강 유역 지배를 굳히며 중부 지역에서의 우위를
확립했고,
▶ 562 이어
대가야를 멸망시키며
가야 일대를 차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