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관산성 전투


554년

고구려에 의해 한성이 함락된 후, 백제는 나제동맹을 맺어 한강 유역을 되찾았음.
그러나 신라가 기습적으로 백제의 한강 유역을 점령하자, 분노한 백제는 대규모 군사를 동원해 관산성을 공격함.
하지만 전투는 신라의 승리로 마무리됨.

관산성전투

■ 배경
□ 나제동맹의 형성
 ▶ 427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며 남진을 본격화하자,
 ▶ 434 위기의식을 느낀 백제는 신라에 화친을 제안하였고, 이는 결국 나제동맹으로 이어짐.

□ 백제의 한강 유역 상실
 ▶ 474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공격을 요청하자,
 ▶ 475 이에 대한 보복으로 고구려군이 한성을 포위하였음.
 ▶ 475 결국 개로왕은 아차성 아래에서 전사하였고, 폐허가 된 도성에서 즉위한 문주왕은 웅진 천도를 결정함.

□ 백제의 정치적 혼란기
 ▶ 477 해구가 22대 문주왕을 시해하고 23대 삼근왕을 옹립함.
 ▶ 479 삼근왕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24대 동성왕이 즉위함.
 ▶ 493 동성왕은 신라 왕녀와 혼인하여 나제동맹을 강화했으나,
 ▶ 497~ 재위 후반에는 측근 정치 때문에 혼란이 커졌고, 사비 천도를 반대한 백가를 좌천시킴.
 ▶ 501 이에 불만을 품은 백가는 동성왕을 시해하였고, 뒤이어 25대 무령왕이 즉위함.
 ▶ 무령왕은 백가의 반란을 진압하고 내정을 안정시켜 백제를 다시 강국으로 부흥시킴.

□ 사비 천도 및 한강 유역 수복
 ▶ 523 무령왕이 세상을 떠난 뒤, 26대 성왕이 즉위하여
 ▶ 538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으며, 한강 유역의 수복을 추진함.
 ▶ 551년 백제는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고 
 - 그 결과 백제는 한강 하류 6개 지역(서쪽)을, 신라는 한강 상류 10개 지역(동쪽)을 각각 차지함.

■ 관산성 전투
□ 나제동맹의 와해
 ▶ 고구려와 신라는 비밀리에 밀약을 맺음.
 - 고구려는 북방의 돌궐 세력과 내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남쪽의 문제를 조속히 정리하고자 하였고, 신라는 중국과의 교통로를 확보하고 평야 지역이 있는 한강 하류를 차지하기를 원했음.
 ▶ 553년 신라는 백제가 점령하고 있던 한강 하류를 기습 점령함(나제동맹 와해). 
 ▶ 옛 땅을 다시 잃은 백제는 이에 대한 보복을 준비하며 대규모 전쟁을 추진함.

□ 관산성 전투 전반
 ▶ 554년 왕자 창이 이끄는 백제군은 가야와 왜의 연합군과 함께 관산성을 공격하여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어 갔음.

□ 백제 성왕 전사
 ▶ 전쟁이 길어지자 백제 성왕은 아들 창(위덕왕)을 위로하기 위해 소수 병력을 이끌고 관산성으로 향했음.
 ▶ 그러나 백제군과 합류하기도 전에 매복해 있던 신라군에게 발각되어 전사함. 
 ▶ 성왕의 전사 소식이 전해지자 백제군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졌고, 기세가 오른 신라군이 총공세를 펼쳐 대승을 거둠.

■ 이후
 - 백제는 위덕왕(왕자 창)이 즉위했지만, 국력은 예전만 못했음.

 - 신라는 한강 유역 지배를 굳히며 중부 지역에서의 우위를 확립했고, 
 ▶ 562 이어 대가야를 멸망시키며 가야 일대를 차지함.

관산성전투


# 참고 자료
[관산성전투]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