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 멸망
▶ 668년 9월 나당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는 멸망하였고,
보장왕과 지배층은 포로가 되어 장안으로 끌려갔음.
- 당은
멸망의 책임을 연개소문에게 돌려
보장왕을 처벌하지 않았고,
고구려 영토를 재편해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였음.
- 또한
고구려 백성을 강남·회남 등지로, 지배층은 당 내지로 이주시켜 본토의
물적·인적 기반을 분리함으로써 반란 가능성을 억제함.
■ 고구려 부흥 운동
- 670.3 신라와
고구려 부흥 세력은 압록강을 건너 요동 지역의 오골성을 선제공격함.
□ 검모잠의 부흥 운동
▶ 670년 4월 검모잠은 수임성(지금의 경기도 파주시)에서 백성들을 규합해
고구려 부흥 운동을 일으켰음.
▶ 이어 신라로 망명했던 안승(고구려의 왕족)을
맞이해 왕으로 삼고, 신라에 고구려 부흥 운동에 대한 협조를 요청함.
▶ 이후
검모잠은 안승에게 죽임을 당하고, 안승은 다시 신라로 돌아갔음.
□ 안승의 부흥 운동
▶ 670.7 신라 문무왕은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책봉하고, 그를
금마저(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에 머물게 했음.
↘ 익산은 안승이 북방 본토와 연결되는 것을
차단하는 동시에, 외세인 당군의 침입을 막고 옛 백제 지역의 민심까지
견제할 수 있는 위치
▶ 671.7 이후
당군이 안시성에서 고구려 부흥군을 격파하였고,
▶ 672.7~8 이어 당군이 평양 일대를 공략하자 신라·고구려 부흥 연합군이 이에
맞섰으나 결국 패배하였음.
▶ 672.12
백수산 전투에서도 신라의 지원이 있었음에도 고구려 부흥군은 다시
패하였고,
▶ 673.5 호로하(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전투에서 고구려 부흥군이
당군에게 패하면서, 고구려 부흥 운동의 마지막 전투가 막을
내림.
□ 보덕국 건국
- 당은 신라가 고구려 부흥 운동을 지원하자,
당에 머물던 김인문(문무왕의 동생)을 신라 왕으로 세우려 했음.
▶ 674
그러나 문무왕은 안승을 다시 보덕왕으로 책봉함.
□ 신라의 삼국 통일과 보덕국의 멸망
- 676 신라는
신라-당 전쟁에서
승리하며 당군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냄.
▶ 680.3
문무왕은 여동생(조카?)을 안승에게 시집보내 안승을 왕실 일원으로
편입시키고,
▶ 683년 10월 관직과 김씨 성을 내려 진골 귀족으로 만든 뒤, 거처를 경주로
옮기게 하여 보덕국을 사실상 해체하였음.
▶ 684.11
이에 안승의 조카인 장군이 보덕성에서 고구려 유민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 신라는 이를 진압한 뒤 금마저의 고구려
유민을 경주 남쪽으로 강제 이주시키며 보덕국은 완전히 멸망함.
■ 이후
▶ 698
이후 고구려 유민 세력은 동북 지역에서 발해를 건국해 고구려의 계승
국가로 자리 잡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