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고구려 5부


고조선 멸망 후 여러 집단이 통합되어 4부가 형성되고, 주몽이 계루부를 더해 5부 체제로 고구려를 건국함.
초기에는 5부가 자치권을 가진 연합 구조였으나, 점차 왕권이 강화되며 5부 체제는 약화됨.

고구려 5부

■ 4부 형성
□ 철기문화 유입
 ▶ BCE 4C 철기문화가 한반도에 유입되기 시작했고,
 ▶ BCE 2C 본격적화되며 압록강 중상류 일대에 ‘나(노)’ 집단들이 등장하였음.
 ↘ ‘나(노)’라는 명칭은 강가나 계곡을 뜻하며, 이들은 압록강과 혼강 유역을 근거지로 삼음.

□ ‘나’ 집단 통합
 ▶ BCE 108 이후 고조선이 멸망하고 한사군이 설치되자,
 ▶ ‘나’ 집단은 한사군의 압박에 맞서 연맹과 정복을 거치며 점차 통합해 나갔음.
 ▶ BCE 1세기 경 이 과정에서 여러 ‘나’ 집단은 4부 체제로 재편되었으며, 그중 비류나부(소노부)가 중심이 되어 연맹체를 주도했음.
 ↘ ‘삼국사기’에는 비류나부·연나부·환나부·관나부로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 문헌에는 소노부·절노부·순노부·관노부로 전함. 이후 계루부가 새로 참여하는데, 이 부만 ‘나’자가 붙지 않아 주몽 집단을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 5부 형성(고구려 건국)
 ▶ 기원전 37년 주몽이 계루부를 기반으로 기존 4부를 포섭해 고구려를 건국하며 5부 체제가 성립함. 
 ↘ 연구자들은 주몽 집단이 연맹체의 맹주가 되었고, 고구려는 이후 점차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전하며 성립했을 거라 해석함.

□ 왕권과 연합적 공존 관계
 - 5부는 각기 독자적인 조직과 군사력을 갖추어 자치권을 행사했으나,
 - 계루부 왕권이 전쟁·외교·무역 등 대외 교섭권을 장악하여 나머지 4부를 통제하며 연맹을 유지하였음.

 - 고구려의 중요한 국정은 5부 대가들이 모인 제가 회의에서 결정되었으며, 왕은 이를 주재하는 최고 지위자였을 뿐 절대적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니었음. 

□ 왕권의 강화
 ▶ 고구려 왕권은 점차 강화되면서 5부의 독자성과 자치성을 약화시키려 하였음.
 ▶ 2C 말 9. 고국천왕 시기와 사후에 연나부와 비류나부가 반란을 일으켜 왕권에 저항하였으나 모두 진압되었고, 그 결과 5부의 자치권은 크게 약화됨.

 - 왕위 계승이 부자 계승으로 바뀌며 왕권이 강화되었고, 왕은 ‘태왕’ 칭호를 사용하며 절대적 권력자가 됨. 

■ 5부 붕괴
 ▶ 3C 이후 이에 따라 5부 지배 세력은 독자적 권한을 잃고 수도로 이주하여 중앙 귀족으로 편입되었음. 
 ▶ 유력 지배층이 수도로 옮겨오면서 5부는 지방 자치성과 단위 정치체의 성격을 상실하고 수도의 행정 구역으로 변함.
 ▶ 그 결과 부의 명칭도 지명에서 방위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왕이 고구려 전체를 직접 통치하는 중앙집권 체제가 완성됨.




# 참고 자료
[고구려 5부]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