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1894
청·일 전쟁 후
삼국간섭으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 감소
▶ 1895.10
을미사변으로 조선에 친일 내각이 수립
▶ 1896.2
아관파천으로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증가
▶ 1896.5~1898.4
베베르-고무라 각서, 로마노프-야마가타 의정서. 로젠-니시 의정서
체결
- 러시아의 남하 정책과 일본의 동아시아 진출
정책이 충돌하자, 서로의 이익을 인정하고 충돌을 피하려 함.
▶ ~1901.9
청에서 의화단 운동이 발생하자, 서구 열강은 자국민 보호 등을 목적으로 중국에 군대를
파견
- 러시아군은 중국에 계속 주둔하여 만주에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대한제국의 용강포를 강점하고 마산포를 조차함
▶ 1902.1
일본은 영국과 동맹 수립 (1차 영·일 동맹)
▶ 1903 말
일본은 대한제국과 공수동맹 체결을 강구하고, 대한제국은 전시 국외
중립 선언을 준비
- 일본은 대한제국에 도일
망명자(을미사변, 독립협회 사건 등으로 일본에 망명한 사람들) 처리를
제안
▶ 1904.1.19
대한제국과 일본의 교섭 시작
- 대한제국은 망명자
처리를 우선시하고, 일본은 유사시 상호 지원을 우선시함
- 1904.1.21 대한제국은 중국 즈푸(옌타이시)에서 전시 중립 선언을
발표
- 고종은 일본에 전시 안전 보장과 중립을
요구하지만, 일본과 교섭은 성사되지 않음
■ 러·일 전쟁
▶ 1904.2 일본이
뤼순과 제물포에 있는 러시아 함대를 급습하고, 일본군이 인천으로
파병
▶ 2.9 일본군이 서울에 진입하고, 하야시 공사는 군사기지 제공과
협력을 골자로 조약 체결을 요구
▶ 2.10 일본은
러시아에 선전포고하고, 러시아 공사관은 철수함
▶ 2.23
외부대신 이지용과 하야시 공사가 한·일 의정서를 체결
- 대한제국
영토 내에서 일본군의 군사적 행동을 허용하는 군사 동맹적 조약
- 일본은
대한제국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정치 개선을 요구함
- 대한제국과
일본은 외국과 조약 시 상호 승인을 전제함
■ 이후
▶ 1904.8 제1차 한·일 협약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