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경덕왕은 중앙·지방 행정체계를 정비하고 대규모
불사를 추진하며 왕권을 강화했으나,
↘ ’불사(佛事)‘는 부처를 위하는 일과 관련되어
불가에서 행하는 모든 일
- 말기에는 이에 반대하는 진골이 나타나 귀족
사회가 분열되었음.
- 또한, 골품제의 구조적
한계로 관직에서 소외된 진골 귀족이 늘어났고, 왕실과 혼인한 일부
귀족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정치 구조는 더욱 경직되었음.
▶ 758년 7월 23일
경덕왕과 만월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혜공왕이
▶ 760.7
태자에 책봉됨.
↘ ‘삼국사기’에는 혜공왕은 출생 당시 천둥번개 등
흉조가 나타났다고 기록되고, ‘삼국유사’에는 경덕왕이 상제의 경고를
알면서도 딸을 아들로 바꾸어 얻은 결과로 혜공왕이 태어났다고
전함.
■ 재위 기간
▶ 765년 경덕왕 사후 8세의 혜공왕이 즉위하였고, 만월태후가 섭정을
맡았음.
▶ 766 이후
혜공왕은 직접 신궁에서 제사를 지내 시조신에게 왕위 계승을 공식적으로
고하고,
▶ 768
당으로부터 왕위에 대한 책봉을 받음.
- 766~768
해 2개가 동시 출현, 기형 송아지 출산, 관청 붕괴, 하늘의 북소리,
지진, 별의 낙하, 혜성 출현, 우레·우박·가뭄과 호랑이의 궁중 침입 등
각종 흉조와 천재지변이 잇따라 발생함.
□ 대공의 난(96각간의 난)
▶ 768.7
‘삼국사기’에 따르면 일길찬 대공과 아찬 대렴 형제가 주도한 반란이
전국에서 발생함.
- 이 난은 왕도 경주를 포함한 신라 전역 상당 부분이 휩싸인
전례 없는 전국적 정치 대반란이었음.
-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96각간이라는 표현은
실제 각간 96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란의 규모와 전국적 확산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이해됨.
↘ ‘각간’은 신라 최고위 관등
▶ 768
반란군은 왕궁을 33일간 포위하며 왕권을 직접 위협하였고, 전국으로
확산한 반란을 진압하는 데 약 3개월이 소요됨.
□ 왕권 회복 시도와 이어진 반란
▶ 768.10 상대등과
시중을 새로 임명하는 인사 개편으로 정국 안정을 도모하고,
▶ 769.5
인재 추천을 통해 정치적 소외 계층의 불만을 완화하는 한편,
▶ 770.1
서원경으로 행차해 주·현의 죄수를 사면함으로써 지방 사회의 안정을
꾀하였음.
▶ 770
대아찬 김융이 다시 반란을 일으킴.
- 771년 12월
성덕대왕 신종 (봉덕사종, 에밀레종, 국보 제29호)을 완성하여 왕권의 정통성과 정치적
권위를 회복하고자 하였음.
↘ 경덕왕(혜공왕의 아버지)이 아버지인 성덕왕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종
▶ 775.6 전
시중으로서 혜공왕을 보좌하던 김은거가 반왕파의 세력 확대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킴.
▶ 775.8
현직 시중이던 정문과 염상이 봉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하여
처형되었음.
□ 혜공왕 친정
▶ 775 혜공왕은 18세 무렵 친정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 776 이어
오묘제를 미추이사금을 시조로 하고 무열왕·문무왕을 포함한 왕의
2대조를 제사 대상으로 개편함.
- 776
경덕왕이 추진했던 한화 정책을 원상으로 되돌림.
■ 사후
□ 김지정의 난
▶ 780년 김지정이 세력을 모아 궁궐을 포위·침입하며 정변을 일으켜
혜공왕을 시해했고,
▶ 780.4
김양상(선덕왕)과 김경신(원성왕)이 김지정 일파를 토벌함.
▶ 이후
중대에 왕권을 갖지 못했던 내물왕계 출신의 선덕왕이 즉위하면서 신라
하대가 시작되어 약 150년 동안 20명의 왕이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