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1275년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왕원은
▶ 1277
이복형인 강양공 왕전을 제치고 세자로 책봉되었고,
▶ 이후
원에서 오랜 기간 숙위생활을 하며 지냈음.
□ 귀국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
▶ 1294 원 세조
쿠빌라이가 사망하고 성종 테무르가 즉위하면서 고려와 원의 관계가
경색되었음.
↘ 고려와 원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름.
▶ 1295 이에 원에서
숙위하던 왕원은 귀국하여 국정을 담당하기 시작했고,
▶ 1296
이후 원 성종의 조카딸인 계국대장공주와 혼인하면서 양국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음.
□ 충렬왕 측근 숙청과 권력 장악
▶ 1297.5 어머니
제국대장공주의 죽음이 충렬왕의 측근들 때문이라고 판단한 왕원은
이들을 숙청하고
▶ 1297.8~12
인사를 주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였음.
- 1297.10
이에 충렬왕은 왕위를 왕원에게 넘기겠다는 뜻을 원에 전달하였음.
■ 즉위 이후
□ 충선왕의 즉위와 폐위
▶ 1298년 1월 충렬왕의 양위로 즉위한 충선왕은 정치 개혁과 관제 개편을
추진했으나,
▶ 이 과정에서 원이 문제 삼을 수 있는 관직들을
복구하였음.
▶ 1298.8 여기에 조비무고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원과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즉위 7개월 만에 폐위되었음.
↘ 충선왕이 조비를 총애하자, 계국대장공주는
조비와 그 어머니가 자신을 저주하여 왕의 총애를 잃었다는 무고를 원
황실에 알린 사건.
□ 부자간의 정쟁
▶ 충렬왕의 측근들이 충선왕의 원 황실 부마 지위를
박탈하기 위해 계국대장공주와 서흥후 왕전의 재혼을 추진하면서,
충선왕과 충렬왕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음.
▶ 1307 이후 충선왕은 원의 황위 계승 과정에서 무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황실 내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 1307-1308
심양왕에 봉해진 뒤, 1310 심왕으로
승급되었음.
□ 복위와 요령통치
▶ 1308.8 충렬왕이 세상을 떠나고 고려 국왕으로 복위한
충선왕은
▶ 1308.11 약 3개월 만에 원으로 돌아갔으며, 이후에는 왕명을 고려에
전달하는 요령통치(전지정치)를 통해 국정을 운영하였음.
↘ 왕이 원에 머물면서 신하들을 통해 왕명을
전달하고 국정을 운영하던 통치 방식.
↓ 아마도... 충선왕은 아버지의 정치적 경험과
자신의 폐위를 통해 원 황실과의 관계가 왕권 유지에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복위 이후에도 원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임.
■ 양위 이후
□ 왕위 양위와 원에서의 활동
▶ 충선왕은 원에 장기간 머무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 1313 고려 왕위를 아들 왕도(충숙왕)에게 물려주었으나, 이후에도
전지를 통해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였음.
- 1314 또한
원에 만권당을 세워 학자들과 교류하였으며,
↘ 이제현은 만권당에서 원나라 학자들과 교류하며
성리학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그의 학문은 이색 등 후대 학자들에게
계승되어 고려 후기 성리학 발전에 영향을 주었음.
▶ 1316 이후
심왕위를 조카 왕고에게 물려주었음.
↘ 이후 왕고는 원나라 황실의 지원을 바탕으로 고려
왕위를 차지하려 하였으며, 충숙왕·충혜왕과 대립하였음.
□ 토번 유배
▶ 원에서 활동을 이어가던 충선왕은
▶ 1320
원 인종(아유르바르와다)이 사망하고 영종(시디발라)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갈등에 휘말려 토번(지금의 티베트고원 일대)에
유배되었고,
▶ 1323
원 영종이 사망하고 태정제(예순테무르)가 즉위하면서 유배에서
풀려났음.
▶ 1325년
이후 원의 수도 연경(지금의 베이징)에서 세상을 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