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고려 제26대 충선왕

왕원, 왕장 제25대 충렬왕의 아들, 제27대 충숙왕의 아버지
1298년, 1308년부터 1313년까지 왕위에 있었음.

충선왕은 원 황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키웠지만, 즉위 후 원과의 갈등으로 폐위되었음.
복위 후에는 원에 머물며 전지정치를 펼쳤고, 양위 후에는 원의 정쟁에 휘말려 유배를 겪음.

고려 제26대 충선왕

■ 즉위 이전
 ▶ 1275년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왕원은
 ▶ 1277 이복형인 강양공 왕전을 제치고 세자로 책봉되었고,
 ▶ 이후 원에서 오랜 기간 숙위생활을 하며 지냈음.

□ 귀국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
 ▶ 1294 원 세조 쿠빌라이가 사망하고 성종 테무르가 즉위하면서 고려와 원의 관계가 경색되었음.
 ↘ 고려와 원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름.
 ▶ 1295 이에 원에서 숙위하던 왕원은 귀국하여 국정을 담당하기 시작했고,
 ▶ 1296 이후 원 성종의 조카딸인 계국대장공주와 혼인하면서 양국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음.

□ 충렬왕 측근 숙청과 권력 장악
 ▶ 1297.5 어머니 제국대장공주의 죽음이 충렬왕의 측근들 때문이라고 판단한 왕원은 이들을 숙청하고
 ▶ 1297.8~12 인사를 주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였음.
 - 1297.10 이에 충렬왕은 왕위를 왕원에게 넘기겠다는 뜻을 원에 전달하였음.

■ 즉위 이후
□ 충선왕의 즉위와 폐위
 ▶ 1298년 1월 충렬왕의 양위로 즉위한 충선왕은 정치 개혁과 관제 개편을 추진했으나, 
 ▶ 이 과정에서 원이 문제 삼을 수 있는 관직들을 복구하였음.
 ▶ 1298.8 여기에 조비무고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원과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즉위 7개월 만에 폐위되었음. 
 ↘ 충선왕이 조비를 총애하자, 계국대장공주는 조비와 그 어머니가 자신을 저주하여 왕의 총애를 잃었다는 무고를 원 황실에 알린 사건.

□ 부자간의 정쟁
 ▶ 충렬왕의 측근들이 충선왕의 원 황실 부마 지위를 박탈하기 위해 계국대장공주와 서흥후 왕전의 재혼을 추진하면서, 충선왕과 충렬왕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음.
 ▶ 1307 이후 충선왕은 원의 황위 계승 과정에서 무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황실 내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 1307-1308 심양왕에 봉해진 뒤, 1310 심왕으로 승급되었음.

□ 복위와 요령통치
 ▶ 1308.8 충렬왕이 세상을 떠나고 고려 국왕으로 복위한 충선왕은 
 ▶ 1308.11 약 3개월 만에 원으로 돌아갔으며, 이후에는 왕명을 고려에 전달하는 요령통치(전지정치)를 통해 국정을 운영하였음. 
 ↘ 왕이 원에 머물면서 신하들을 통해 왕명을 전달하고 국정을 운영하던 통치 방식.
 ↓ 아마도... 충선왕은 아버지의 정치적 경험과 자신의 폐위를 통해 원 황실과의 관계가 왕권 유지에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복위 이후에도 원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임.

■ 양위 이후
□ 왕위 양위와 원에서의 활동
 ▶ 충선왕은 원에 장기간 머무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 1313 고려 왕위를 아들 왕도(충숙왕)에게 물려주었으나, 이후에도 전지를 통해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였음. 
 - 1314 또한 원에 만권당을 세워 학자들과 교류하였으며,
 ↘ 이제현은 만권당에서 원나라 학자들과 교류하며 성리학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그의 학문은 이색 등 후대 학자들에게 계승되어 고려 후기 성리학 발전에 영향을 주었음.
 ▶ 1316 이후 심왕위를 조카 왕고에게 물려주었음.
 ↘ 이후 왕고는 원나라 황실의 지원을 바탕으로 고려 왕위를 차지하려 하였으며, 충숙왕·충혜왕과 대립하였음.

□ 토번 유배
 ▶  원에서 활동을 이어가던 충선왕은
 ▶ 1320 원 인종(아유르바르와다)이 사망하고 영종(시디발라)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갈등에 휘말려 토번(지금의 티베트고원 일대)에 유배되었고,
 ▶ 1323 원 영종이 사망하고 태정제(예순테무르)가 즉위하면서 유배에서 풀려났음.
 ▶ 1325년 이후 원의 수도 연경(지금의 베이징)에서 세상을 떠남.




# 참고 자료
[충선왕]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