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화성 지역의 3.1 운동 전개 
 → 3.11~27
            기독교와 천도교 지도자들이 주도하고 주민이 시위에
            참여 - 평화적으로 이루어짐
 → 3.28
            송산면에서 700여 명이 시위 중, 주모자가 일본 순사의 총에 맞아 중상을
            입자 순사를 살해
 → 3.29
            성호면에서 시위 중, 주모자 등 7명이 체포되자 주재소·면사무소 등을
            습격하고 일본인 상점과 가옥에 불을 지름
 → 3.31
            향남면 발안리에서 1,000여 명이 만세운동을 벌이자, 일본 헌병의 발포로
            조선인 3명이 다침
 → 이에 순사부장을 살해하고
            일본인 보통학교·우편국·면사무소에 불을 지름
 → 경기도
            장관은 조선총독부에 진압 지원을 요청, 일제 군경은 발안리 주변을
            거점으로 삼음
 → 4.2
            일제 군경은 파견되어 1차 진압을 실시(4.2~6)
 → 4.9
            일제 군경은 다시 파견되어 2차 진압을 실시(4.9~16)
          
            ■ 제암리 학살 사건
 → 4.13
            아리타 중위가 이끄는 육군 보병 79연대가 발안리에 도착
 → 4.15 14:00
            400여 명이 만세 시위 진행하자 아리타 중위는 이를 해산 시킴
 → 4.15 16:00
            제암리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아리타 중위와 군인들은 주민 20여 명을
            교회당에 소집함
 - 주민들에게 사격을 가하고 교회당에 석유를 뿌려 불태운 뒤.
              교회당에서 탈출하는 사람은 밖에서 살해 
          
            ■ 제암리 사건의 경과
 → 4.16
            미국 부영사, 선교사, AP 통신원 등이 수촌리 방화사건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제암리 사건 현장을 발견
 → 일제의
            기독교 탄압 사건으로 선교사들에게 알려짐
 → 일제는
            사건이 국내외로 알려지고 외교 문제로 확대될 기미가 보이자, 아리타
            중위를 군법회의에 회부
 → 8.21
            아리타 중위는 무죄를 선고받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