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고조선이 멸망한 후 유민들이 산골에서 여섯 촌락(6촌)을 이루며 모여 살았음.
▶ 기원전 69년 어느 날 고허촌의 촌장 소벌공이 양산 나정 근처에서 말을
보았는데, 말은 울며 사라지고 그 자리에 큰 알이 남았고, 그 알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남.
- 박혁거세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경주 나정 은
1975년에 사적 245호로 지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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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가 되는 알영은 알영정(경북 경주)에서 용이 나타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짐.
■ 거서간 즉위
▶ 기원전 57년 혁거세는 13세에 6부(6촌의 촌장들)의 추대를 받아 거서간으로
즉위하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정함.
↘ 국호 ‘서라벌’은 이후 신라의 수도 경주를
가리키는 명칭이 됨.
▶ BCE 50, 28
왜와 낙랑이 침범하려 했으나, 혁거세의 덕과 백성들의 도덕적 생활을
보고 물러남.
▶ BCE 41
왕후 알영과 함께 6부를 순행하며 백성을 위로하고 농사와
잠업(누에치기)를 권장함.
▶ BCE 37
수도에 금성을 쌓음.
↘ 이후 5. 파사이사금이 경주에 월성을 축조하고
거처를 옮김.
▶ BCE 20
공물 문제로 마한의 관계가 긴장 상태를 맞이했으나,
▶ BCE 19
마한왕이 죽자 혁거세는 공격 대신 사신을 보내 조문함.
▶ BCE 5
동옥저에서 혁거세의 인품을 칭송하며 좋은 말을 바침.
■ 이후
▶ CE 4
혁거세거서간이 세상을 떠나고, 2. 남해 차차웅이 즉위함.
□ 오릉(사릉) 설화
▶ 혁거세가 죽자 시신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뒤에
유해가 흩어져 땅에 떨어짐.
▶ 이에 사람들이 합장하려
했으나 큰 뱀이 막아 다섯 능에 나누어 묻음.
- 경주 오릉 은 1969년 사적 172호로 지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