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 이후 수호통상과 개화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
            ■ 고종은 친정을 선포하고(1873) 권력
            기반 강화에 주력하여 군영과 재정기관을 장악
 - 조일수호조규(1876)를 전후하여 조선은 일본의 침략 가능성과 러시아의 위협을 염두
 → 청에
            영선사 파견 시도 - 의정부 대신들은 부정적
 → 1880
            2차 수신사를 통해 ‘조선책략’이 국내 반입 - 의정부
            대신들은 ‘조선책략’이 제시하는 대외정책에 부정적
 → 고종은
            의정부와 비슷한 지위를 가진 기구를 설립
          
            ■ 통리기무아문 설치
 - (개화 정책에 중점을 두어) 외국과 교섭·통상 및 군사와 국정
              전반에 관한 업무 수행 
 - 실무를 담당하는 12사(12개 부서)가 설치되고,
            실질적 주도층은 개화파 인사와 민씨 척족 세력으로 구성
 → 1881.4~5?
            신식 군대인 교련병대(별기군)을 창설하고 일본인 교관 초빙
 → 1881.9
            청에 영선사 파견하여 근대 무기 제조 기술과 군사 훈련법
            교육 → 1883 근대적
            무기 공장인 기기창 설립
 → 1881.11
            7사로 개편
 - 조약 체결·교섭 등을 처리
          
            ■ 임오군란 발생(1882)
 → 대원군 집권, 통리기무아문 폐지, 삼군부
            부활
 → 청에 의해 진압되고 대원군이
            납치됨 - 대원군 계열은 사실상 몰락
 → 1882.12
            ‘통리군국사무아문’으로 명칭 변경 - 군국기무 총괄, 궁내의 사무를 관장하는 최고의 국정운영
              기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