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생과 성장
□ 삼국사기에 기록된 탄생 설화
▶ 다파나국 왕과 여국왕의 딸 사이에서 7년 만에 알이
태어나자, 왕은 불길하다 하여 버리려 했으나 왕비가 궤작에 넣어 바다에
띄움.
▶ 궤짝은 금관국 해변에 닿았으나 사람들이
거두지 않았고,
▶ 기원전 19년 다시 흘러 진한의 아진포에 도착했을 때, 한 할머니가 궤짝을
건져 열어보니 그 안에서 아이가 나왔음.
- 할머니는 아이를 거두며 궤짝을 따라온 까치의
‘작(鵲)’을 줄여 성을 석(昔)이라 하고, 궤짝에서 나왔다 하여 이름을
탈해라 지음.
□ 삼국유사에 기록된 탄생 설화
▶ 신라 2. 남해차차웅 대(기원후 4~24)
가락국 바다에 한 배가 도착했으나 머물지 않고 신라 아진포에 이르러,
까치가 모여든 상자 속에서 용성국 왕자라 밝힌 아이 석탈해가
나타났음.
- 그는 어머니가 7년 만에 알을 낳았고,
아버지가 버린 궤를 붉은 용이 호위해 신라까지 이끌었다고 말함.
▶ 성장한
석탈해는 호공의 집터를 차지하기 위해 숯과 숫돌을 묻어두고 대대로
대장간이던 땅이라 속여 빼앗음.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석탈해 설화는
바다를 통해 들어온 외래 세력이 철기 기술을 기반으로 신라 사회에
정착하며 세력을 확장한 과정을 상징함.
□ 왕실의 사위가 됨
▶ 8 석탈해는 2.
남해차차웅의 사위가 되어,
▶ 10
신라의 최고위 관직인 대보 자리에 오름.
▶ 20
2. 남해차차웅은 “왕위는 아들이나 사위가 아니라 나이가 많고 어진 자가
이어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김.
▶ 20
이에 탈해가 “어진 이는 이가 많다”는 말에 따라 치아의 개수로 정하자고
제안하였고, 그 결과 유리이사금이 왕위에 오름.
↘ 이사금은 ‘이가 많은 사람’이라는 뜻의 잇금에서
비롯된 왕호로, 연장자 우선의 원칙을 반영한 것.
■ 재위 기간
▶ 3. 유리이사금은 임종을 앞두고 선왕의 뜻에 따라 이사금의
지위를 탈해에게 물려줌.
▶ 기원후 57년 이에
탈해이사금이 즉위하였고,
▶ 즉위 직후 과거에 집을
빼앗았던 호공을 대보로 임명하여 석씨와 박씨 세력의 연합을 공고히
함.
□ 치적
▶ 59 탈해이사금은
왜와 우호 관계를 맺었으나,
▶ 64
백제의 공격을 받았고 이후에도 네댓 차례에 걸쳐 침략이 이어졌음.
▶ 67 또한 박씨 세력을 지방 관리로 임명해, 행정 구역(주와 군)을
맡아 다스리게 하였으며,
▶ 77 황산진에서
가야군과 전투를 벌였음.
□ 삼국사기에 따른 김알지 탄생 설화
▶ 65(삼국유사에선 60년) 시림에서 들려온 닭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금궤 속에 단정한
아이가 있었고, 그가 곧 김알지였음.
↘ 경주 김씨의 시조로 전해지며, 뒤이어 262년에
미추가 이사금의 자리에 오름.
▶ 이에 탈해이사금은 시림을 계림이라 고쳐 부르고
국호로 삼음.
- 신라 계림 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됨.
■ 사후
▶ 80
탈해이사금이 세상을 떠나고, 5. 파사이사금이 즉위함.
↘ ‘삼국유사’에 따르면 탈해이사금은 죽은 뒤
초인적인 크기의 뼈로 나타나 신격화되어 동악신으로 모셔지며 국가
제사의 대상이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