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437 습보갈문왕과
조씨부인(눌지마립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남.
↘ 갈문왕은 신라에서 왕의 아버지나 가까운
친척에게 주어 왕을 보좌하게 한 명예직
■ 재위 기간
▶ 500년
소지마립간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고, 당시 갈문왕의 지위에 있던 64세의 지증왕이
즉위함.
↘ 소지마립간 시대의 국정 운영 문제와 사금갑
설화, 그리고 지증왕이 즉위 후에도 한동안 갈문왕의 칭호를 사용한 것
등으로 보아 당시 정치적 분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 502 우경을
전국에 보급해 농업 생산력을 높이고, 동시에 순장을 금지함.
↘ 우경은 소를 이용한 농사법이며, 순장은 고위층이
사망했을 때 사람을 함께 묻는 장례 풍습임.
□ 국호·왕호 확정
▶ 503년 지증왕은 ‘신라’라는 국호와 ‘왕’이라는 호칭을
공식화함.
- 이는 신라가 여러 수장의 연합체(6부)에서
벗어나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로 발전했음을 의미함.
↘ ‘왕’ 호칭을 도입했지만, 법흥왕 시기에도 여전히
‘매금(마립간)’이라는 옛 칭호가 병용됨.
□ 법과 제도 마련
▶ 504 친족 관계에
따라 상복 기간을 구분한 상복법을 제정하였음.
▶ 505 주·군·현을 정하고, 군사와 행정을 함께 담당하는 군주를
파견하여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확립함.
- 실직주(지금의 강원도 삼척)에는 이사부를
군주로 임명함.
▶ 505
이어 얼음을 보관·관리하는 제도와 선박 이용 제도를 마련하였음.
▶ 509 동시전을 설치해 왕경의 시장 업무를 담당하게 함.
□ 우산국 정벌
▶ 512 하슬라주 군주인 이사부가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을 정벌해
신라의 영토로 편입시켰음.
↘ 신라의 ‘주’는 행정 중심지가 아니라 군사
주둔지였으며, ‘군주’는 지방의 행정관이기보다 군사 지휘관적 성격이
강했음.
□ 소경(小京) 설치
▶ 514 최소의
소경인 아시촌소경(현재의 경남 함안)을 설치해 지방 통치를
효율화함.
↘ 소경은 수도 경주를 보조하며 지방 통치를
효율화하기 위해 설치된 작은 수도
■ 사후
▶ 514년 7월
지증왕이 세상을 떠나고,
법흥왕이 즉위하여
▶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함으로써
신라를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시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