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1937.7
중일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 1937.9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간 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짐.
- 민족혁명당(1935)의 김원봉은 중국인들에게 합작을 주장하며 협력을 이끌어냄.
■ 조선의용대
□ 계림(구이린)에서의 활동
▶ 1938.10 한중 연합군대인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어
▶ 1938.11 계림에
대본부를 둠.
- 장제스의 중국군사위원회 산하에서
국민당의 지원과 지역 군벌,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음.
- 대일·대중국인
선전 임무를 맡아 무장 정치선전대로 활동하고, 기관지
‘조선의용대통신’를 발행함.
↘ 조선의용대의 활동과 한중 연대를 담아내며,
정치적 토론과 선전 등을 통해 항일투쟁을 전개한 기관지
▶ 1939.10
중국 국민당의 소극적인 항일 투쟁으로 이내 다수 병력이 화북으로 북상을 시작함.
□ 화북(화베이)에서의 활동
🌍 1941.6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며 공산주의 세력에 위기가 발생함.
▶ 1941 여름
조선의용대는 조선 민중과 함께하며 조선 청년들을 모으기 위해 화북
지역의 팔로군 근거지로 이동함.
↘ 팔로군(제8로군)은 중국 공산당이 통제하는
독립부대
▶ 1941.7
화북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조선인들과 함께 별도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창설함.
- 무장 선전과 간부 양성에 힘쓰며 항일활동을
전개함.
- 호가장 전투(1941.12)와 반소탕전(1942.5)에서 팔로군과
함께 일제와 전투를 펼침.
🌏 1941.12
태평양 전쟁 발발로 강대국들이 일본과 대립하게 됨.
□ 조직 재편
▶ 1942.5 김원봉 등
일부는 한국광복군으로 합류하고,
▶ 1942.7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는 중국 공산당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개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