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1910.8
경술국치
- 조선총독부는 일본어를 ‘국어’로, 한국어를
‘조선어’로 격하시켜 일본어 중심의 교육 정책을 시행하고,
- 한글은 일본어 보급의 도구로 취급하여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는 방식을 사용함.
□ 조선어 연구회
▶ 1921 주시경의
제자들이 조선어 연구회를 조직해서 조선어 철자법을 연구·보급하고
‘한글’을 간행함.
▶ 1926~
한글날을 제정해 기념식을 개최했으며,
▶ 1929
조선어사전 편찬회를 조직하고,
▶ 1930.12
총독부 철자법이 아닌 독자적인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기로 결의함.
■ 조선어학회
- 단순한 언어 연구를 넘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동함.
▶ 1931
조선어학회로 개칭하고, 외래어 표기법 통일을 위한 협의회를 구성함.
▶ 1933.10 표준말 원칙과 세부 표기 규정을 담은 ‘한글 마춤법 통일안’을
반포함.
↘ 현대 한국어 맞춤법과 표준어의 기본 틀을
마련
□ 일제의 탄압
▶ 1935
조선총독부는
조선어학회가 조선일보, 동아일보, YMCA 등과 연계하던 운동을
금지함.
▶ 1936.10
한글날 기념식에서 표준어 어휘집인 ‘조선어 표준어 사정안’을
발표되었으나, 안창호의 발언으로 경찰이 개입하면서 행사가 중단됨.
▶ 1937.6~
수양동우회 사건(흥사단
관련)으로 학회 인사들이 검거되고,
↘ 조선총독부가 수양동우회의 영향력을 우려해
탄압하고, 일부 민족운동 인사를 전향시킴.
▶ 1938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학회 인사들이 퇴직당함.
↘ 흥업구락부는 이승만의 독립혁명동지회와
연관
▶ 1939
조선어학회는 명맥 유지를 위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산하로
들어감.
▶ 1940
‘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간하고,
▶ 1940.3
조선총독부에 ’조선어 대사전‘ 출판을 신청해 조건부 허가를 받음.
▶ 1940.6
한글 음운에 기반한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발표하고,
▶ 1941
일제의 허가를 받아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책자로 발간함.
□ 조선어학회 사건
▶ 1942.10~1943.4 일제는 조선어학회 회원 31명을 내란 혐의로 검거하고, ‘조선어
대사전’ 원고를 압수함.
- 조선어학회는 3.1 운동·신간회·임시정부 등
다양한 민족운동 인사들이 모여있었음.
■ 광복 이후
▶ 1945
조선어학회가 재건되어 국어 표기법 정비와 교육 기반을 마련하고,
‘조선어 대사전’ 편찬 재개와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 등을 통해 조선어는 다시 ‘국어’의 지위를 되찾게 됨.
▶ 1947~1957
조선어학회는 총 6권의 ‘조선말 큰사전’을 간행하고,
▶ 1949.10
‘한글학회’로 개칭함.
▶ 2004~
남북공동 ‘겨레말큰사전’ 편찬의향서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