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조선식산은행

식산은행
토지조사사업 완료 후 설립

조선식산은행은 일본의 식민지 착취 금융기관으로,
산미증식계획과 전시 경제 지원을 통해 조선인의 자금을 일본 군수산업 자금으로 유출함.


식산(殖産): ‘번식하다’와 ‘생산하다’를 합친 뜻으로, 농업·공업·광업 등의 산업을 증진하고 경제를 개발한다는 의미를 가짐.

■ 이전
 ▶ 1905.11  을사늑약 → 통감정치
 ▶ 1906.3 ‘농공은행조례’ → 산업자금을 공급하는 은행들이 설립됨.
 ▶ 전국에 설립된 농공은행은 단기성 예금을 기반으로 상업 대출을 주로 운영함.
 - 대한제국 정부가 자금을 투자하고 국민이 주주가 된 특수은행이지만, 실권은 일본인이 행사함.

 ▶ 1910  경술국치, 토지조사사업 시작
 ▶ 1918 1차 세계대전 종료, 토지조사사업 완료로 담보 대출이 더 용이해짐.

■ 조선식산은행
 ▶ 1918.6 ‘조선식산은행령’ 공포
 ▶ 1918.10 조선총독부는 6개의 농공은행을 강제로 합병하여 조선식산은행을 설립함.
 - 일본인 임원이 임명되어 일본 자본 중심으로 운영되고, 기존 조선인 임원의 영향력은 감소함.
 - 자본의 최대 10배 이상 채권을 발행했으며, 이 채권의 90%를 일본에서 소화함.

□ 산미증식계획
 ▶ 1920~ 1차 산미증식계획
 - 식산은행은 일본 자본을 조선에 대출하고, 원금과 이자를 회수해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역할을 함. 
 ▶ 1923 식산은행의 농업 대출이 증가하며(일본인이 약 60% 차지), 조선 내 농업 투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함.

 ▶ 1926 2차 산미증식계획 → 조선인에 대한 대출이 증가하며 농가의 금융 의존도가 상승함.
 ▶ 1928~ 쌀값 하락세 시작으로 지주가 소작농에게 비용을 전가하자 소작농이 몰락하고,
 ▶ 1930s 농업 공황 심화로 지주 파산이 늘어나자 담보로 설정된 농지가 대거 식산은행으로 귀속됨.
 - 1931 자회사(성업사)를 설립해 귀속된 농지를 관리·경영하며 수익을 확보함.

□ 중일 전쟁 (1937~)
 - 일본은 전시체제 구축을 위해 조선총독부를 통해 금융을 통제하며,
 - 시국 산업에 자금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국채 보유를 의무화해 군수 산업 자금을 마련함. 
 - 강제 저축으로 모인 예금도 전시 자금으로 조달됨.
 ▶ 1939~ 조선식산은행의 주요 대출 분야가 농업에서 광·공업으로 이동하고,
 ▶ 1940 군수 관련 광·공업 기업에 대한 자금 융통을 전담하며, 국가의 융자 명령을 받는 은행으로 지정됨.

□ 태평양 전쟁 (1941~)
 ▶ 1942.9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식산은행령’을 개정하고, 광·공업 분야 대출액이 증가함.
 ▶ 1943~ 모든 은행의 예금 금리가 낮아지자, 식산은행의 자금 대부분은 국채 인수에 사용됨.

■ 이후
 ▶ 1945.8 광복 이후, 조선총독부와 은행들은 자금을 유용해 사업체의 임금과 퇴직금 등을 지급함.
 ▶ 조선총독부의 무책임한 지출로 조선인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미군정을 설득해 책임을 추궁받지 않음.
 ▶ 1950~1953  6.25 전쟁 
 ▶ 1954 한국산업은행으로 재편·강화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