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16C 후반,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여진족
            사회가 성장하고, 임진왜란 때 세력을 확장
 → 1616
            여진족은 후금을 건국
 → 명은 후금 토벌을
            실시하지만 심하전투(1619)에서
            대패 - 조선도 명과 함께 참전하지만, 연산군의 중립
            외교로 후금과의 관계는 악화하지 않음
 → 1623
            인조반정으로 인조 즉위
 → 인조 정권은 친명배금 정책을 시행하고 명의 장수 모문룡을 지원
 → 후금은 요동
            정벌 후, 요서 지방에 진출하다가 명에게 패배하고 누르하치가 사망
 → 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홍타이치는 모문룡 제거와 조선 복속을 위해 전쟁을 일으킴
          
            ■ 후금은 명을 공격하기 전에 배후(조선)의 공격을 방지할 필요성이
            있음
■ 고려에서 이괄의 난(1624)에 가담한 일부가 후금으로 도망가 인조반정의 부당성을 주장
 - 후금은
            광해군을 위해 보복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며 조선을 공격
          
            ■ 정묘호란
 - 1627.1.13
            후금은 의주를 공격 → 1.24
            후금은 평양에 진주
 → 조선 조정은 분조를
            실행 - 인조는 강화도로,
            소현세자는 전주로 향함
 → 조선은
            군대를 정비하여 임진강과 한강을 방어선으로 삼음
 → 후금은
            명의 본국 공격과 군수 보급 등의 문제가 있었고, 조선은 군사력과
            식량의 부족으로 두 국가 모두 전쟁을 장기화할 수 없기에 강화를
            맺음(정묘화약)
 - 후금은 조선에 형제의 관계를
            맺을 것을 제의하고 → 조선은 명과 사대관계를 유지하면서 후금과 형제관계를
              맺음 
 - 조선에서는 명과의 사대의리를 강조하는 강화
            반대 여론(척화론)과 전력의 열세로 화친을 주장(주화론)하는 세력으로
            나뉨
          
            ■ 정묘호란 이후
 - 1627.9
            후금군 완전 철병
 - 명은 조선이 후금과 통교하기에
            비난·의심을 하고, 후금은 조선이 명을 돕기에 비난함
 → 1636
            후금은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서 조선에 군신관계를 요구
 → 1636
            병자호란 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