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1983년

광복과 전쟁 이후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겼고, 특별 생방송을 통해 10,957명의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됨.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 배경
□ 해방 이후
 ▶ 1945.8 광복 이후 남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며 남북 간 왕래와 우편 교류가 제한됨.
 ▶ 1948 이후 남북에 각각 별도의 정부가 세워졌고, 고향이나 가족이 있는 남이나 북으로 갈 수 없는 이들이 생겨났음.
 - 남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자 북쪽의 자본가와 지주, 종교인 등은 탄압을 피해 남쪽으로, 남쪽의 공산주의자들은 북쪽으로 이동함.

□ 6.25 전쟁
 ▶ 1950.6.22 남북 간의 우편물 교환이 완전히 중단된 가운데,
 ▶ 1950.6.25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났고,
 ▶ 1953.7 휴전 이후에도 남북의 대립 속에서 월북·월남자, 납북자, 미송환 포로 등 새로운 이산가족이 계속 생겨났음.

 ▶ 남북 이산가족뿐만 아니라 전쟁과 피난으로 남한 내에서도 가족과 생이별한 국내 이산가족이 많았으며, 대한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계기로 이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기 시작함.

■ 국내 이산가족 찾기
□ 라디오 방송 시작
 ▶ 1973.10 대한적십자사는 KBS라디오와 협력해 처음으로 이산가족 명단과 사연을 방송함.
 ▶ 1974 이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고정 프로그램으로 방송이 본격화되었고, 국민적인 관심을 끌게 됨.
 - 국내 이산가족 찾기 신청 526건은 대부분 해방 후나 한국전쟁 중에 헤어진 가족을 찾는 것이었으며, 일부는 일본 징용이나 만주·중국 등지로 간 혈육을 찾는 경우도 있었음.

 ▶ 1977~ 대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 찾기를 국민운동으로 확산하기 위해 사진전시회를 열고, 편지와 수기를 모아 단행본을 발간함.

□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특별 생방송
 ▶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 KBS 1TV에서 특별 생방송을 시작하자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관심과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 7.1 예상보다 큰 반응에 방송은 새벽 2시 30분까지 연장함.

 ▶ 7.1 이른 아침부터 KBS 본관 앞에는 1만여 명의 이산가족이 모이자
 ▶ KBS는 연장 방송을 결정하고 ‘이산가족찾기추진본부’를 긴급 설치했으며,
 ▶ 7.3 모든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종일 생방송을 이어갔음. 
 ▶ KBS와 대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 명단이 실린 호외를 매일 발행했고, 주요 신문들도 생방송 3일째부터 이를 1면 머리기사로 다루기 시작했음.
 ▶ ~7.12 총 100,952건의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가 접수됨.

 ▶ 1983년 11월 14일 새벽 4시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특별 프로그램은 약 453시간 45분의 기록적 장기 생방송 끝에 종료되었고, 최종적으로 10,957명의 이산가족이 상봉에 성공함. 

■ 이후
 ▶ 이 방송은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주목받으며 남북 분단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림.

 ▶ 1985남북 이산가족 만남이 이루어짐.
 ▶ 2015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인류 공통의 역사로 인정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