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함경남도 원산은 강원도 위쪽에 항구도시로,
            영국계 제유회사인 라이징선이 한반도 북부에 석유를 공급하기 위해
            공장을 세움.
 ↘ 원유를 가공해서 공급하는 곳
□ 조선인 노동자 폭행사건
 ▶ 1928.9
            제유공장의 일본인 감독 고타마가 한국인 노동자를 폭행하자,
 ▶ 한국인 노동자들은 폭행에 항의하며 파업을
              벌였고, 원산노동연합회(원산노련)도 이에 합류함.
 ▶ 이에
            회사는 파업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 감독 처벌과 노동자 처우 개선 요구를
            수용함.
          
            ■ 원산 총파업
□ 갈등의 재점화
 ▶ 1929.1 하지만
            회사가 요구를 이행하지 않자, 원산노련과 제유공장 노동자들은 다시
            파업을 시작하고,
 ▶ 이에 반발한 운송업자들은 원산노련
            노동자를 해고하며 대응함.
 ▶ 1.17~18
            그러자 원산노련 소속 노동자들이 운송업자의 해고 조치에 항의하며
            파업에 참여함.
 ▶ 파업이 확산되자 운송업자는
            원산경찰서와 원산상업회의소(원산상의)에 조정을 요청하고,
□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결
 ▶ 1.23 원산노련은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함. 
 - 원산노련은 성명서를 발표하며 언론을 통한
            여론전에 나섰고,
 - 원산상의는 주요 신문을 통해
            파업의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양측의 대립은 더욱
            격화됨.
□ 일제의 무력 개입
 ▶ 원산노련이 총파업을 이어가자, 국내외의 지지 속에
            투쟁 열기는 더욱 고조되었지만,
 - 일제는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원산노련과 파업 노동자들을 압박하며 지역 전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함.
 ▶ 1.29~ 일제 경찰은 원산노련 산하 조직을 수색하고 지도부를 체포하며
              본격적인 탄압에 나섬. 
 ▶ 1929.2~
            운송업자들은 원산노련을 대신할 함남노동회를 설립하고 노동자를 모집한
            뒤, 함남노동회 소속자만 고용하겠다고 발표함.
□ 해산
 ▶ 4월 초 원산노련
            소속 일부 노동자들이 함남노동회를 공격하자 일제 경찰은 이를 빌미로
            원산노련 간부들을 체포함.
 ▶ 결국 한계에 다다른
            원산노동연합회(원산노련)는 노동자들이 각자 선택해 일터로 돌아가도록
            결정하고,
 ▶ 4.21
            사무실을 폐쇄하며 총파업이 종료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