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산미증식계획


1920~1934, 1940~1945

식민지 조선에서 쌀을 증산하여 일본 내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함.
쌀 생산을 늘리는 정책으로 생산량은 증가했지만, 일본으로 반출된 쌀이 더 많음.

■ 이전
 ▶ 1910 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 1914~1918 1차 세계대전으로 일본 경제가 성장하며 물가도 함께 상승함.
 ▶ 1918 쌀 가격이 폭등하면서 일본 전역에서 쌀 소동이 발생함.
 - 1919 3.1 운동 이후, 일본은 식민지 통치 전략을 바꾸며 조선 경제 개편 시도함.

■ 산미증식계획
 - 일본 내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을 주요 식량 공급지로 활용하고, 
 - 조선총독부의 농업정책을 수정하여 토지 개량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 친일 지주층을 육성하고 농민을 통제함으로써 식민 지배를 더욱 강화하고자 함.

□ 1차 계획
 ▶ 1920~1925 산미증식계획
 -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해 수로 정비, 신규 농지 개설, 토지 용도 변경 등 토지개량사업과
 - 비료 사용 증가, 재배 방법 개선, 개량 품종 도입 등 농사개량사업을 추진함.

 ▶ 토지 개량보다 구매가 유리한 구조와 경제 불황으로 인한 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1차 계획은 실패함.

□ 2차 계획
 ▶ 1926~1934 산미증식갱신계획
 - 사업 조달 자금보다 정부 알선 자금의 비중을 늘리고, 지주들의 이자 부담을 경감시킴.

 ▶ 1926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토지개량부를 설치하고,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1927)를 세움.
 ▶ 1928 조선총독부에 토지개량부를 신설하여 갱신 계획을 추진함.
 ▶ 토지개량사업은 목표 대비 낮은 실적을 보였지만, 농사개량사업은 갈수록 계획보다 더 많은 자금이 공급됨.

 ▶ 1920년대 중반 일본 시장에 쌀이 과잉 공급되고,
 ▶ 세계 대공황(1929)과 농업공황으로 일본 내 쌀 가격이 하락함. 
 ▶ 1931~1932 동양척식주식회사 토지개량부와 조선총독부 토지개량부를 연이어 폐지하고,
 ▶ 1934 결국 산미증식갱신계획을 중단함.

□ 3차 계획
 - 1937~ 중일 전쟁 이후, 일본의 식량 부족이 심화함.

 ▶ 1940~1945 조선증미계획과 개정증미계획
 ▶ 1940~ 재배 방법 개선과 토지개량사업을 중심으로 조선증미계획을 실시함.

 - 1941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의 식량 부족이 악화하자
 ▶ 1942 개정증미계획으로 개정함.
 ▶ 1943 조선총독부가 관개개선사업과 간척사업을 추진했지만,
 ▶ 전쟁 확대로 인한 노동력·자금 부족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함.

■ 영향
 - 산미증식계획으로 한국 농업은 쌀 중심으로 변화해 밭작물 생산이 줄고, 농가들의 자립성이 약화됨.
 - 쌀 생산량은 늘었지만 일본 반출량이 더 많아 한국인의 쌀 소비량은 큰 폭으로 감소함. 
 - 농업 자금 대출이 지주층에 집중되면서 지주제가 강화되고, 소작농은 혜택을 받지 못했음.
 - 한국인과 일본인 대지주의 이익이 늘어났지만 소작농은 과중한 비용 부담에 시달림.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고등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산미증식계획]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