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1910
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 1914~1918
1차 세계대전으로
일본 경제가 성장하며 물가도 함께 상승함.
▶ 1918
쌀 가격이 폭등하면서 일본 전역에서 쌀 소동이 발생함.
- 1919 3.1 운동
이후, 일본은 식민지 통치 전략을 바꾸며 조선 경제 개편 시도함.
■ 산미증식계획
- 일본 내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을 주요 식량 공급지로
활용하고,
- 조선총독부의 농업정책을 수정하여 토지 개량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 친일
지주층을 육성하고 농민을 통제함으로써 식민 지배를 더욱 강화하고자
함.
□ 1차 계획
▶ 1920~1925
산미증식계획
-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해 수로 정비,
신규 농지 개설, 토지 용도 변경 등 토지개량사업과
- 비료
사용 증가, 재배 방법 개선, 개량 품종 도입 등 농사개량사업을
추진함.
▶ 토지 개량보다 구매가 유리한 구조와
경제 불황으로 인한 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1차 계획은 실패함.
□
2차 계획
▶ 1926~1934
산미증식갱신계획
- 사업 조달 자금보다 정부 알선
자금의 비중을 늘리고, 지주들의 이자 부담을 경감시킴.
▶ 1926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토지개량부를 설치하고,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1927)를 세움.
▶ 1928
조선총독부에 토지개량부를 신설하여 갱신 계획을 추진함.
▶ 토지개량사업은
목표 대비 낮은 실적을 보였지만, 농사개량사업은 갈수록 계획보다 더
많은 자금이 공급됨.
▶ 1920년대 중반
일본 시장에 쌀이 과잉 공급되고,
▶ 세계 대공황(1929)과 농업공황으로 일본 내 쌀
가격이 하락함.
▶ 1931~1932
동양척식주식회사
토지개량부와 조선총독부 토지개량부를 연이어 폐지하고,
▶ 1934
결국 산미증식갱신계획을 중단함.
□ 3차 계획
- 1937~ 중일 전쟁
이후, 일본의 식량 부족이 심화함.
▶ 1940~1945
조선증미계획과 개정증미계획
▶ 1940~
재배 방법 개선과 토지개량사업을 중심으로 조선증미계획을 실시함.
- 1941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의
식량 부족이 악화하자
▶ 1942
개정증미계획으로 개정함.
▶ 1943
조선총독부가 관개개선사업과 간척사업을 추진했지만,
▶ 전쟁
확대로 인한 노동력·자금 부족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함.
■ 영향
- 산미증식계획으로 한국 농업은 쌀 중심으로
변화해 밭작물 생산이 줄고, 농가들의 자립성이 약화됨.
- 쌀 생산량은 늘었지만 일본 반출량이 더 많아 한국인의 쌀
소비량은 큰 폭으로 감소함.
- 농업 자금 대출이 지주층에 집중되면서
지주제가 강화되고, 소작농은 혜택을 받지 못했음.
- 한국인과 일본인 대지주의 이익이 늘어났지만 소작농은 과중한
비용 부담에 시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