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6~1871까지 일어난 박해를 총칭하며 병인년에 시작하여 병인박해라
            부름
■ 서양 열강에 대한 보복으로 단행되어 큰 피해가 발생
          
            ■ 사회적 배경
 - 천주교와 성리학의 가치관 차이로 인해 조선에서는 천주교를
              공식적으로 금지함 (충효 vs. 유일신, 신분제 등)
 - 흥선대원군의 왕권 강화 정책에서 천주교는 왕권을 위협하는
              사상으로 인식됨 
          
            ■ 1858.6 중국과 러시아(아라사)의 톈진조약으로 러시아는 연해주 지방을
            차지
 → 1864 러시아는 남하 정책을 펴며 조선에
            통상을 요구
 → 이에 천주교도들은 프랑스, 영국과 수교를 통해 러시아 견제를
              제시,
            흥선대원군은 포교의 자유를 암시하며 동의
 → 1866.1
            지방에 있는 주교가 서울로 올라오는 사이, 영·프 연합군이 북경을
            함락하고 살육을 저질렀다는 편지가 조선으로 도착
 → 조정은
            프랑스에 우호적이던 흥선대원군을 압박, 러시아의 통상 요구는 지속되지
            않음
 → 흥선대원군은 정권 유지를 위해 천주교도
            박해를 결정
          
            ■ 전개
 - 1866 봄,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대비하고자 프랑스와 동맹을 시도, 결렬 → 병인양요 발생
 - 1866 가을, 병인양요의 원인이
            천주교도에게 있다고 단언하고 탄압
 - 1868
            남연군묘 도굴 시도를 천주교도의 소행으로 간주하여 탄압(무진사옥)
 - 1871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천주교도의 소행으로 인식하여 탄압(신미사옥)
          
■ 1886 조·불통상조약 체결, 이후 조선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포교를 허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