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신라 23대 법흥왕

모즉지, 22대 지증왕의 아들, 24대 진흥왕의 삼촌
514년부터 540년까지 약 27년 동안 왕위에 있었음.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의 법과 제도를 통일하고, 왕권을 중심으로 한 통치 체제를 확립하였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해 국가의 통합 이념으로 삼았으며,
금관가야를 복속하여 영토와 교통상의 거점을 확보함.

법흥왕

■ 즉위 이전
 ▶ 500~ 지증왕이 즉위 후 왕권을 강화하며 지방과 관직 제도를 정비하였고,
 ▶ 이후, 지증왕과 연제부인 박씨 사이에서 법흥왕이 태어남.

■ 재위 기간
 ▶ 514년 지증왕이 세상을 떠나고, 법흥왕이 즉위함.

□ 군사
 ▶ 516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관직인 병부령을 임명하고,
 ▶ 517 군사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부서인 병부를 설치함.

□ 율령 반포
 - 당시의 신라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법과 제도를 가지고 있어 중앙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했음.
 ▶ 520년 그러나 법흥왕의 율령을 반포하며 신라 전역을 하나의 법과 제도로 통일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확립함. 
 - 골품제에 따라 1등급 이벌찬부터 17등급 조위까지의 17관등제가 확립됨.

 ▶ 이후, 외위 제도를 통해 새로운 지방 세력을 신라의 지배 체제에 편입시키고, 도사와 군주 등의 지방관을 파견하였음.

□ 불교 공인
 - 신라에는 눌지마립간 대에 고구려와 백제를 통해 불교가 전래되어 민간에 퍼졌음.
 ▶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려 하자, 토착 신앙을 믿던 귀족들의 거센 반대가 일어났음.
 ▶ 527년 이때 이차돈이 왕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고, 그의 순교를 계기로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됨. 
 - 또한, 이 과정에서 토착신앙을 따르던 귀족들의 반대를 율령에 근거해 제압하며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였음.

 ▶ 이후 법흥왕은 불법을 실천하고 불교를 국교로 확립하고, ‘법공’이라는 법명을 사용했음.
 ▶ 529 도살 등의 살생을 금지하는 금령을 내림.

 ▶ 531 국사를 총괄하는 최고 관직인 상대등을 처음으로 두고 철부를 임명함.

□ 금관가야 정복
 ▶ 532년 신라는 금관가야를 복속하였고, 금관가야의 왕과 왕족들은 신라에 귀순하였음. 
 ↘ 이후,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태어난 김유신은 훗날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끌게 됨.
 - 신라는 낙동강 동쪽 지역을 확보하고, 교통의 요충지인 김해를 차지하여 남해안 진출의 기반을 마련함.

□ 연호 사용
 - 536 법흥왕은 신라의 국력 신장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연호인 ‘건원’을 사용하기 시작함.

■ 사후
 ▶ 540년 7월 법흥왕이 세상을 떠나고, 진흥왕이 즉위함.
 - 법흥왕의 무덤은 전통적으로  경주 법흥왕릉 (사적 제176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위치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음.




# 참고 자료
[법흥왕]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