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500~
지증왕이 즉위 후 왕권을
강화하며 지방과 관직 제도를 정비하였고,
▶ 이후,
지증왕과 연제부인 박씨 사이에서 법흥왕이 태어남.
■ 재위 기간
▶ 514년 지증왕이
세상을 떠나고, 법흥왕이 즉위함.
□ 군사
▶ 516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관직인 병부령을 임명하고,
▶ 517
군사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부서인 병부를 설치함.
□ 율령 반포
- 당시의 신라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법과 제도를
가지고 있어 중앙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했음.
▶ 520년
그러나 법흥왕의
율령을 반포하며 신라
전역을 하나의 법과 제도로 통일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확립함.
- 골품제에 따라 1등급 이벌찬부터 17등급
조위까지의 17관등제가 확립됨.
▶ 이후, 외위
제도를 통해 새로운 지방 세력을 신라의 지배 체제에 편입시키고, 도사와
군주 등의 지방관을 파견하였음.
□ 불교 공인
- 신라에는 눌지마립간 대에 고구려와 백제를
통해 불교가 전래되어 민간에 퍼졌음.
▶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려 하자, 토착 신앙을 믿던 귀족들의 거센 반대가
일어났음.
▶ 527년
이때 이차돈이 왕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고, 그의
순교를 계기로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됨.
- 또한, 이 과정에서 토착신앙을 따르던 귀족들의
반대를 율령에 근거해 제압하며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였음.
▶ 이후 법흥왕은 불법을 실천하고
불교를 국교로 확립하고, ‘법공’이라는 법명을 사용했음.
▶ 529
도살 등의 살생을 금지하는 금령을 내림.
▶ 531
국사를 총괄하는 최고 관직인 상대등을 처음으로 두고 철부를 임명함.
□ 금관가야 정복
▶ 532년 신라는 금관가야를 복속하였고, 금관가야의 왕과 왕족들은
신라에 귀순하였음.
↘ 이후,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태어난 김유신은
훗날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끌게 됨.
- 신라는 낙동강 동쪽 지역을 확보하고, 교통의
요충지인 김해를 차지하여 남해안 진출의 기반을 마련함.
□ 연호 사용
- 536 법흥왕은
신라의 국력 신장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연호인 ‘건원’을
사용하기 시작함.
■ 사후
▶ 540년 7월
법흥왕이 세상을 떠나고, 진흥왕이 즉위함.
- 법흥왕의
무덤은 전통적으로
경주 법흥왕릉 (사적 제176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위치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