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고구려 15대 미천왕

을불, 호양왕, 14대 봉상왕의 조카, 16대 고국천왕의 아버지
재위 300년부터 331년까지

미천왕은 서안평을 점령하고 낙랑군과 대방군을 고구려 영토로 편입했으며,
이어 현도성을 함락하며 요동 진출을 시도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음.

미천왕

■ 배경
 ▶ 291 팔왕의 난으로 내분에 빠진 서진은 흉노와 선비 등 북방 민족을 끌어들였고,
 ▶ 그 결과 북방 민족들이 화북에서 세력을 키우며 5호 16국 시대(304~)가 열림.

□ 봉상왕 즉위
 ▶ 292 14대 봉상왕은 즉위 후 신망 높은 공신을 제거하고,
 ▶ 293 이어 아우 돌고를 반역 혐의로 자결시켰음. 이때 돌고의 아들 을불은 가까스로 도망쳐 목숨을 건졌으며,
 ▶ 머슴살이를 거쳐 소금장수를 했으나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려 재산을 빼앗기고 살아감.

 ▶ 봉상왕은 자연재해와 흉년 속에서도 궁궐 증축 등 토목공사를 강행하며 민심을 잃었음.

■ 재위 기간
 ▶ 300년 국상 창조리가 신하들과 함께 봉상왕을 폐위하고 별실에 가둔 뒤, 을불을 맞이해 옥새를 바침. 

□ 모용외의 성장
 ▶ 302 요서 지방의 모용외가 국가 체제를 갖추고
 ▶ 307 스스로 선비대선우를 칭하며 선비족 통일을 시도하면서 세력을 확장해 나갔음.

□ 서안평 점령
 ▶ 302 미천왕은 군사를 이끌고 현도군을 공격하고,
 ▶ 311 이후 요동의 서안평을 점령하여 낙랑군과 대방군을 서진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요동 진출의 발판을 마련함. 

□ 낙랑군과 대방군 점령
 - 하지만 당시 모용외 세력이 급성장하자, 미천왕은 배후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남쪽의 낙랑군과 대방군을 먼저 공략함.

 ▶ 낙랑군과 대방군을 실질적으로 다스리던 장통은 고구려의 거듭된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요동으로 달아나 모용외에게 의탁했음.
 ▶ 313 이에 미천왕은 낙랑군을 멸망시키고
 ▶ 314년 대방군까지 점령하여 두 지역을 고구려 영토로 편입함으로써 요동 진출의 준비를 마침. 

□ 요동 진출 시도
 ▶ 315 미천왕은 현도성을 함락하며 요동 진출을 본격화했으나, 
 ▶ 316 서진 멸망 뒤 요동·요서의 한족 유민들이 모용외에게 몰리면서 세력을 키운 모용외가 최비와 고구려 등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요동을 장악했음.
 ▶ 미천왕은 끝내 모용외의 공세와 방어에 막혀 화친을 맺을 수밖에 없었고, 요동 진출은 실패로 돌아갔음.

 ▶ 330 미천왕은 모용외를 견제하기 위해 후조에 사신을 보내 연합을 시도했으나,
 ↘ 후조는 중국 5호 16국 중 하나임.
 ▶ 331년 미천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협공 계획은 무산되고 뒤이어 16대 고국원왕이 즉위함. 

■ 이후
 ▶ 342 전연의 모용황이 침입해 환도성을 유린하고 왕비와 왕의 어머니를 사로잡았으며,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까지 가져갔음.
 ▶ 343 이에 고국원왕이 신하를 자처한 뒤에야 시신을 돌려받을 수 있었으나, 이후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기록에 전하지 않음.




# 참고 자료
[미천왕]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