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291
팔왕의 난으로 내분에 빠진 서진은 흉노와 선비 등 북방 민족을
끌어들였고,
▶ 그 결과 북방 민족들이 화북에서 세력을
키우며 5호 16국 시대(304~)가
열림.
□ 봉상왕 즉위
▶ 292 14대
봉상왕은 즉위 후 신망 높은 공신을 제거하고,
▶ 293
이어 아우 돌고를 반역 혐의로 자결시켰음. 이때 돌고의 아들 을불은
가까스로 도망쳐 목숨을 건졌으며,
▶ 머슴살이를 거쳐
소금장수를 했으나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려 재산을 빼앗기고 살아감.
▶ 봉상왕은
자연재해와 흉년 속에서도 궁궐 증축 등 토목공사를 강행하며 민심을
잃었음.
■ 재위 기간
▶ 300년 국상 창조리가 신하들과 함께 봉상왕을 폐위하고 별실에 가둔
뒤, 을불을 맞이해 옥새를 바침.
□ 모용외의 성장
▶ 302 요서 지방의
모용외가 국가 체제를 갖추고
▶ 307
스스로 선비대선우를 칭하며 선비족 통일을 시도하면서 세력을 확장해
나갔음.
□ 서안평 점령
▶ 302 미천왕은
군사를 이끌고 현도군을 공격하고,
▶ 311
이후 요동의 서안평을 점령하여 낙랑군과 대방군을 서진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요동 진출의 발판을 마련함.
□ 낙랑군과 대방군 점령
- 하지만 당시 모용외 세력이 급성장하자,
미천왕은 배후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남쪽의 낙랑군과 대방군을 먼저
공략함.
▶ 낙랑군과 대방군을 실질적으로
다스리던 장통은 고구려의 거듭된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요동으로 달아나
모용외에게 의탁했음.
▶ 313
이에 미천왕은 낙랑군을 멸망시키고
▶ 314년 대방군까지 점령하여 두 지역을 고구려 영토로 편입함으로써
요동 진출의 준비를 마침.
□ 요동 진출 시도
▶ 315 미천왕은 현도성을 함락하며 요동 진출을
본격화했으나,
▶ 316 서진 멸망 뒤
요동·요서의 한족 유민들이 모용외에게 몰리면서 세력을 키운 모용외가
최비와 고구려 등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요동을 장악했음.
▶ 미천왕은
끝내 모용외의 공세와 방어에 막혀 화친을 맺을 수밖에 없었고, 요동
진출은 실패로 돌아갔음.
▶ 330
미천왕은 모용외를 견제하기 위해 후조에 사신을 보내 연합을
시도했으나,
↘ 후조는 중국 5호 16국 중 하나임.
▶ 331년 미천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협공 계획은 무산되고 뒤이어 16대
고국원왕이 즉위함.
■ 이후
▶ 342
전연의 모용황이 침입해 환도성을 유린하고 왕비와 왕의 어머니를
사로잡았으며,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까지 가져갔음.
▶ 343
이에 고국원왕이 신하를 자처한 뒤에야 시신을 돌려받을 수 있었으나,
이후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기록에 전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