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신정권의 성립과 지배층의 저항
▶ 1170
무신정변으로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중앙 정치는 크게 혼란스러워졌음.
▶ 1173
이에 동계에서는
김보당의 난이,
▶ 1174
북계에서는
조위총의 난이
일어나는 등 무신정권에 대한 저항이 이어졌음.
↓ 아마도... 무신정권 아래 권력층의 수탈이
심해지고, 반란 진압을 위한 군사 동원과 물자 조달까지 이어지면서
백성들의 부담은 더 커졌을 것으로 보임.
■ 망이·망소이의 난
□ 공주 함락과 조정의 회유책
▶ 1176년 정월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 등이 반란을 일으켜 공주를
함락하자, 조정은 이들을 회유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음.
↘ 공주 명학소는 지금의 대전 탄방동 일대로
추정되며 숯을 생산하던 곳으로 보이고, 망이와 망소이는 이곳의
하층민이었을 가능성이 큼.
▶ 1176.2 이후
조정은 토벌에 나섰지만 반란을 진압하지 못하자,
▶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하는 이례적인 회유책을 시행하였음.
- 1176.6
한편, 이 시기 조정은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였음.
□ 망이·망소이 세력의 확장과 진압
▶ 1176.9 그러나
망이·망소이 세력은 조정의 회유책에 만족하지 않고 예산과 충주까지
장악하였음.
▶ 1176.12
이에 조정은 군대를 편성해 예산과 충주를 각각 공격하게 하였음.
▶ 1177.1
정부군의 반격을 받은 망이·망소이 세력은 결국 항복하였고, 조정은
이들을 처벌하지 않은 채 고향으로 돌려보냈음.
□ 망이·망소이의 2차 봉기와 난의 종결
- 1177.2 망이와 망소이는 조정이 명학소를 현으로 승격해 회유한 뒤
다시 토벌군을 보내고 가족까지 붙잡아 가두자, 재차
봉기하였음.
▶ 이들은 이전보다 세력을 확대해 아산과 청주까지
장악하였으나,
▶ 1177.6
토벌군의 협공을 받자, 결국 조정에 항복을 요청하였음.
▶ 1177년 7월 이후 망이와 망소이가 토벌군에 붙잡히면서 난은 막을 내리게
됨.
↓ 2006년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 남선공원에는
망이·망소이의 난을 기리는 명학소 기념탑이 세워졌음.
↓ 또한, 탄방동에서는 옛 지명과 지역의 특색을
살린 '숯뱅이 마을축제'가 열리며, 숯주머니 만들기 등 명학소와
탄방동의 기억을 현재의 지역 문화로 이어 가고 있음.
■ 경상도로 확산된 민란
- 무신정권은 망이·망소이의 난을
진압했지만, 특수행정구역민에 대한 차별과 사원·지방관의 수탈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음.
▶ 1177 이에
익산에서 미륵산적의 난이 일어나고,
▶ 1182
옥천·서산·전주에서도 민란이 발생하였음.
▶ 1190
이후 농민 봉기는 경상도까지 확산하여 김사미·효심의 난(1193)과 경주 지역의 농민 반란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