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공손씨의 요동 장악
▶ 고구려는
6대 태조왕 이래
요동(한반도 북서쪽) 진출을 추진했으나,
▶ 190
황건적의 난(184) 이후 요동을 장악한
공손씨 세력이 고구려와 주변 세력을 압박하며 위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유지함.
□ 동천왕 출생
▶ 209 동천왕은
10대 산상왕과 관나부 주통촌 출신 소후(작은 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 산상왕은 연나부 세력의 강성을 견제하기 위해
주통촌 출신 여인을 소후로 맞이했음.
▶ 213 이후 태자로
책봉됨.
■ 재위 기간
▶ 227년 동천왕이
왕위에 오름.
□ 공손씨 정권 멸망
▶ 234 위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맺음.
▶ 237
이후 관구검을 앞세워 요동 정벌에 시도했지만 실패하였고, 이에
공손연은 스스로 연왕을 칭하며 자립함.
▶ 238
이에 위나라의 사마의가 4만 대군으로 요동을 공격하자, 고구려도 천
명의 군사를 파견해 지원했고,
▶ 결국 공손연 부자가
전사하면서 공손씨 정권은 멸망함.
- 이로써 태조왕 대부터 요동 진출을 추진해 온 고구려와, 요동을 넘어
고구려까지 영토를 확장하려던 위나라가 국경을 접하게
됨.
□ 위나라와 대립
▶ 위나라는 바닷길로 낙랑과 대방을 치고, 대방군을
시켜 동예와 한강의 소국들을 압박해 고구려의 후방을 위협하였음.
▶ 242
이에 고구려는 보복으로 요동 서안평을 공격함.
↘ 서안평(요동의 서쪽 관문)은 고구려의 요동 진출
길목이자, 위나라의 요동 방어 요충지임.
□ 환도성 함락
▶ 244 위나라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함.
- 초기에는 동천왕이
연이은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국 패배하여 환도성이 함락되었고,
▶ 245
이후 관구검은 군을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감.
▶ 위군이
재차 출병해 북옥저와 동예까지 공격하며 환도성을 함락시키자 동천왕은
피난길에 오름.
▶ 246년
그러나 유유가 거짓 항복으로 위 장수를 죽여 혼란을 일으키자
동천왕이 반격에 나섰고, 위군은 결국 후퇴함.
▶ 동천왕은 폐허가 된 환도성을 버리고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겼으며, 이로써 고구려의 요동 진출은 좌절됨.
↘ 이 평양성은 장수왕 때의 평양성과는 다른
곳으로, 국내성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함.
■ 이후
▶ 248
국력 회복을 시도하던 동천왕이 세상을 떠나고 12대 중천왕이 즉위함.
▶ 313
15대 미천왕이 서안평과
낙랑군, 대방군 지역을 차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