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남북 이산가족 만남


광복과 전쟁으로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났고, 남북은 적십자회담 등을 통해 만남을 추진해왔음.
1985년 첫 상봉 이후,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음.

남북 이산가족 만남

■ 배경
□ 해방 이후
 ▶ 1945.8 광복 이후 남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며 남북 간 왕래와 우편 교류가 제한됨.
 ▶ 1948 이후 남북에 각각 별도의 정부가 세워졌고, 고향이나 가족이 있는 남이나 북으로 갈 수 없는 이들이 생겨났음.
 - 남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자 북쪽의 자본가와 지주, 종교인 등은 탄압을 피해 남쪽으로, 남쪽의 공산주의자들은 북쪽으로 이동함.

□ 6.25 전쟁
 ▶ 1950.6.22 남북 간의 우편물 교환이 완전히 중단된 가운데,
 ▶ 1950.6.25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났고,
 ▶ 1953.7 휴전 이후에도 남북의 대립 속에서 월북·월남자, 납북자, 미송환 포로 등 새로운 이산가족이 계속 생겨났음.

■ 남북 이산가족 만남
□ 70년대 남북적십자회담
 ▶ 1971.8 남한의 대한적십자사가 북측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을 제안했고,
 ▶ 1972 이를 계기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으며,
 ▶ 1972.8~1973.7 이후 7차례의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열렸음. 

 ▶ 1972 그러나 남한의 유신헌법 제정과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제정, 냉전 구도 속 긴장 재확산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며 지지부진해짐.
 ▶ 1977 결국 8차 본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접촉을 끝으로 남북 간 대화는 중단됨.

 - 1983 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방영되어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재회함.

□ 80년대 남북 이산가족 첫 상봉
 ▶ 1984 남한의 홍수 피해에 대해 북측이 수해 물자를 제공하며 남북 대화가 재개되었고,
 ▶ 1985.5~12 8~10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이어짐.
 ▶ 1985.9 이 기간에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이 처음으로 교환되며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루어졌음. 

 ▶ 1986 하지만 남북 관계가 다시 악화되면서 2차 이산가족 상봉 논의는 결국 무산되고, 이후 민간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만남이 이뤄짐.

□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 1998 김대중 정부는 제3국을 통한 이산가족 교류 지원과 금강산 관광을 통해 남북 교류 활성화 기반을 마련했음.
 ▶ 2000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본격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었지만, 
 ▶ 2001 4차 이산가족 상봉은 미국 9.11 테러 이후 북측의 일방적인 연기로 무산됨.
 ▶ 2002 금강산에서의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교류는 점차 정례화되고 제도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으며,
 ▶ 2007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상봉 확대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졌음.

 ▶ 2008 그러나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북한의 군사 도발이 이어지면서 이산가족 교류가 중단됨.
 ▶ ~2020 이후 이산가족 교류는 간헐적·제한적 형태로만 진행됨.

■ 제한된 상봉
 - 전체 등록자 수보다 상봉자는 매우 적었고, 신청조차 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이들도 많아 실질적인 교류 성과는 제한적이었음.
 - 특히 이산가족 1세대 대부분이 고령자이기 때문에, 남북 이산가족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시급하고 절박한 인도적 과제로 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