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고구려 건국 이전
▶ 음력 5.5 궁예는
신라의 왕자로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불길한 징조를 이유로 버려졌음.
유모 덕분에 간신히 목숨은 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고로 한쪽 눈을
잃음.
▶ 10세에 강원도 영월의 세달사로 출가하여
승려가 됨.
□ 신라 말 혼란기
▶ 889
신라 제51대 진성여왕 때
정부의 통치력이 약해지며 민란이 확산하자
▶ 891
궁예는 죽주(지금의 경기도 안성시)에서 세력을 떨치던 기훤에게
의탁하지만 중용되지 못했음.
▶ 892
이후 북원(지금의 강원도 원주 일대)의 양길 휘하에 들어가 능력을
인정받아
▶ 동쪽 지역을 공략하여 영월·평창·울진
일대까지 장악해 나갔음.
□ 명주 함락 이후 독립 세력 구축
▶ 894 궁예는 명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시)를 함락한 뒤, 부하들에
의해 장군으로 추대되었음.
↘ 양길의 세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군사·정치
기반을 갖춤.
▶ 895 이어 철원 등
강원도 일대 대부분을 장악하고,
▶ 896
철원을 도읍으로 삼아 중앙과 지방에 관직을 설치하는 등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음.
▶ 896
이어 송악(지금의 개성시) 지역 호족인 왕륭과 왕건 부자가 귀부하면서
기반이 강화되었고,
▶ 경기도·황해도 방면으로 진출해
패서 지역과 한산주 일대까지 세력권을 확대하였음.
▶ 898.7
도읍을 송악으로 옮겼으며,
▶ 899
비뇌성 전투에서 옛 상관인 양길에게 대승을 거뒀고,
▶ 900
왕건을 파견해 충주, 청주, 괴산 등 충청도 북부 지역까지 평정함.
- 900
완산주(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에서
견훤이 후백제를 세움.
■ 고려(후고구려) 건국 이후
▶ 901년 궁예는 송악을 도읍으로 삼아 “후고구려”를 세우고, 고구려의
원수(668년 멸망)를
갚겠다고 선언함.
▶ 904 이후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연호를 ‘무태’로 정했으며, 광평성 등을
설치하며 국가 운영 체제를 정비하였음.
▶ 905
이어 연호를 ‘성책’으로 고친 뒤, 수도를 철원으로 다시 옮김.
↘ 철원에 남아 있는 도성 터인 궁예도성은 현재
비무장지대(DMZ) 일대에 위치함.
▶ 909 이후 남부
지역까지 진출해 세력을 더 확장했으며,
▶ 911
국호를 “태봉”으로, 연호를 ‘수덕만세’로 다시 변경하였음.
■ 재위 후반
- 뚜렷한 독자적 지역 기반이 없었던 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을
자칭하고 신격화하며 권위를 세우려 했으나, 점차 반대파를 잔인하게
숙청하는 폭정을 일삼게 됨.
↘ 미륵불은 현세의 부처인 석가모니불에 이어
미래에 도래하여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
▶ 914 연호를
‘정개’로 고침.
▶ 915
궁예가 자신의 악행을 지적하는 왕후 강씨와 두 아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잦은 숙청과 폭정으로 인해 신하와 백성들의 민심을 완전히
잃게 됨.
▶ 918년 왕건이 부하들의
추대로 정변을 일으키자 도주하던 궁예는 결국 백성들에게
살해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