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고조선 멸망


기원전 108년

고조선은 한나라와의 외교 갈등 속에 무제의 침공을 받아 전쟁에 돌입했고,
우거왕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내부 분열로 결국 멸망함.
그 자리에 한사군이 설치되었고, 이후에는 낙랑군만이 유지되었음.

고조선 멸망

■ 이전
 🌏 BCE 202 진나라 멸망 후 유방이 초한 전쟁에서 승리하며 한나라를 세움.
 ▶ BCE 194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고조선의 정권을 탈취함.

 ▶ 한은 위만을 외신으로 삼고, 국경 방어와 이민족 교섭의 중개자 역할을 맡김.
 - 이에 따라 위만조선은 형식적으로 한에 복속되었지만, 내부 자치를 유지하며 강력한 위세와 부를 얻음.

 ▶ 우거왕 시기 위만조선이 한과 주변국 사이의 교섭을 독점하며 영향력을 키우자, 한 무제는 이를 문제 삼으며 긴장이 고조됨.

■ 고조선 멸망
 ▶ BCE 109 한 무제가 외교 문제 해결을 위한 사신을 보내 경고했으나 고조선은 거부했고, 이어 사신이 고조선의 비왕 장을 살해한 뒤 도망치자 고조선은 그를 죽임.
 ▶ 이를 계기로 한 무제는 고조선을 반란 세력으로 규정하고 본격적으로 군대를 일으킴.

□ 초반 전투와 협상의 실패
 ▶ 한군은 양복(해로, 7천 명)과 순체(육로, 5만 명)를 내세워 공격을 개시했지만, 고조선이 이를 모두 격퇴함.
 ▶ 양측 모두 부담을 느껴 협상을 시도했으나, 한의 무장 해제 요구를 함정으로 의심한 고조선 태자가 회군하면서 결렬됨.

□ 한군 내부의 갈등
 ▶ 전쟁이 재개되자 한군은 왕검성을 포위했지만 쉽게 함락하진 못했음.
 ▶ 순체는 적극 공격했으나 양복과 협력하지 못해 갈등이 깊어졌고, 결국 양복이 고조선과 내통한다고 의심해 무제의 사자와 함께 그를 체포하고 지휘권을 넘겨받음.

□ 고조선 지배층의 분열
 ▶ 순체의 공격은 거세지며 고조선 내에서도 전세가 불리해지자 지배층이 항복을 시도하며 분열했고, 끝까지 저항한 우거왕은 내부 인물에게 암살당함. 
 ▶ 이후 성기를 중심으로 저항이 이어졌지만, 그 역시 제거되며 저항은 완전히 무너졌고,
 ▶ 기원전 108년 결국 왕검성이 함락되며 고조선은 멸망함. 

■ 한사군 설치
 ▶ 고조선 영토에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 등 네 개의 군(한사군)이 설치되었으나, 
 ▶ 임둔군과 진번군은 곧 폐지되어 낙랑군과 현도군에 흡수되었고, 현도군도 요동 쪽으로 옮겨지며 사실상 기능을 잃었음.
 ▶ 결과적으로 낙랑군만 고조선의 옛 중심지에 오랜 기간 유지됨.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고등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고조선·한 전쟁]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