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2C 후반
(삼)한과 (동)예 세력이 강성해져 낙랑군의 한반도 중남부 지배력이
약화되자,
▶ 3C 초반
중국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방군을 설치하였음.
▶ 166~
5대 초고왕과 6대 구수왕에 이어
▶ 234
7대 사반왕이 즉위함.
■ 즉위 이후
▶ 234년 사반왕이 어려 정치를 맡지 못하자 5대 초고왕의 동생 고이가
즉위했고,
▶ 이어 여러 차례 천지 제사를 올리며 왕의 권위를
드러냈음.
- 이를 두고 초고계(온조·주몽
계통)에서 고이계(비류·우태 계통)로 왕실이 교체된 사건으로 보기도
하고,
- 온조계 단일 혈통의 입장에서는 외부 위기
속에서 고이왕이 왕위를 이어받은 사건으로 보기도 함.
□ 군사권의 장악
▶ 240 좌장 관직을 신설해 진씨 세력을 중용함으로써 군사권을
중앙으로 집중시킴.
□ 기리영 전투
▶ 246 위나라
관구검은 낙랑태수와 대방태수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여 환도성을
함락시켰음(동천왕
대).
- 이에 고이왕은 좌장 진충을 보내 낙랑을
습격했으나 보복을 두려워해 포로를 돌려주고 물러남.
↘ ‘삼국지’ 동이전에는 신지가 낙랑·대방을 공격해
대방태수가 전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 신지를 고이왕으로 본다면, 고이왕이 마한 세력과
연합해 싸웠으나 결국 포로를 돌려주며 전쟁을 마무리한 것으로
이해됨.
□ 국가통치체제 정비
▶ 260 정월 신하들을 서열에 따라 편제하는 관등제와
▶ 260 2월 관등에
따라 옷 색을 구분하는 공복제를 시행하여 통치 조직을 정비함.
↘ 이는 고이왕 시기에 완전히 마련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정비되어 사비 천도(538) 이후 완비된 것으로 보며, 좌평
제도는 고이왕 시기부터 실제로 기능했다고 봄.
▶ 262년 정월 뇌물 수수와 도둑질에 대한 처벌을 내려 통치 질서를
강화하였음.
↘ 이를 근거로 학계에서는 관등제·공복제와 함께 이
시기에 율령이 반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봄.
■ 이후
▶ 286
고이왕의 뒤를 이어 아들 책계왕이 9대 왕으로 즉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