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종의 출생
□ 고종의 출생과 유배
▶ 1192 왕철은
무신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에 당시 태자였던 왕숙과 원덕태후 유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음.
▶ 1196
이후 이의민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최충헌은
▶ 1197 명종을
폐위하였고, 태자 왕숙과 왕철도 강화도로 유폐하였음.
□ 강종의 즉위
▶ 1210 최충헌은
유배 중인 왕숙을 개경으로 불러들였고,
▶ 1211
희종이 최충헌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폐위되자
왕숙이 왕위에 오르게
됨.
▶ 1212
이듬해 왕철은 태자로 책봉되었음.
■ 고종의 즉위
▶ 1213년 강종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태자 왕철이 왕위에 오르게
됨.
□ 거란의 침입과 강동성 전투
- 이 시기 칭기즈 칸이 몽골 부족을
통합하여(1206) 세력 확장에 나서면서
금이 약화되었고, 1210s 요동의
거란족과 포선만노 세력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며 고려 북방 정세도
혼란해졌음.
▶ 1216
이후 거란족 수만 명이 고려를 침입하여 강원도와 동북 지역까지
약탈하였고,
▶ 1218
이를 추격해 고려에 들어온 몽골군은 고려군과 연합하여 강동성에서
거란 세력을 제압했음.
□ 고려·몽골 관계의 악화
▶ 강동성 전투 이후 고려와 몽골은 형제의 맹약을
맺었으나, 점차 몽골의 일방적인 공물 요구와 압박이 강해졌음.
▶ 1225
고려에 왔던 몽골 사신 저고여가 귀국 도중 압록강 부근에서 살해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되었고, 몽골의 친조·복속 요구도 본격화되었음.
□ 여몽전쟁의 시작과 강화도 천도
▶ 1231년 몽골은
저고여 피살 사건을 구실로 고려를 침략하였고,
▶ 1232
고려는 화친을 시도하여 이듬해 몽골군의 철수를 이끌어냈음.
↓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세대’로 언급되는 1220년대생은 어린 시절부터 몽골의 침입을 겪으며
청·장년기 대부분을 여몽전쟁 속에서 보내게 됨...
□ 전쟁의 장기화
▶ 1232년 7월 이후 최우는 몽골군이 수전에 약하다는 점을 이용하기 위해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겼음.
▶ 1232 이에 몽골은
다시 고려를 침략해 개경 환도와 고종의 친조를 요구하였음.
▶ 1235~1253
이후에도 몽골의 침입은 여러 차례 계속되었고,
- 1236~1251
이 시기 고려는 몽골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팔만대장경을
조판하였음.
↓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팔만대장경, 고려대장경)은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어 있음.
- 1238 한편,
몽골의 침입 과정에서 황룡사 9층 목탑이 소실되었음.
↓ 지금 경북 경주에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
형태로 재현한 경주타워와 목탑을 모티브로 건축된 중도타워가 세워져
있음.
▶ 1254> 특히,
마지막 몽골의 침략은 수년간 전국적으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백성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는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였음.
□ 최씨 정권의 몰락과 강화론의 부상
▶ 1258.3 몽골과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항전을 계속하는 데 대한 반발이 커졌고, 결국
유경·김준 등이 최의를 제거하면서 최씨 무신정권이 붕괴하였음.
▶ 이후
고종과 문신 관료를 중심으로 몽골과의 강화를 주장하는 강화론이 힘을
얻었지만, 실권은 여전히 김준 등 무신 세력에게 남아 있었음.
▶ 1259.4
몽골이 고종의 친조 대신 태자의 입조를 요구하자 태자는 화친을
요청하기 위해 몽골로 향했음.
■ 고종의 죽음
▶ 1259년 6월 고종은 끝내 개경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강화도에서 세상을
떠났고,
↓ 고종의 능인 “강화 홍릉”은 사적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음.
▶ 당시 몽골에 있던
태자(원종)는 차기
권력자로 떠오른 쿠빌라이를 만나 화친을 약속 받았음.
↘ 이때, ‘고려의 풍속과 제도를 바꾸지 않고
유지한다’는 불개토풍를 확약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