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176 태자에
책봉됨.
■ 즉위 이후
▶ 179년 왕위에
오르고,
▶ 180 이어
연나부 출신 우씨를 왕후로 맞이함.
▶ 184 고구려가 세력을 넓혀가자 후한 요동태수가 침공했으나,
고국천왕은 직접 군을 이끌고 이를 물리침.
- 고국천왕은 이러한 외부의 군사적 압박을
극복하기 위해 5부의 자율성을 줄이고 왕권을 강화해 통합적 체제로
나아가고자 했음.
□ 연나부의 반란
▶ 190 어비류와
좌가려가 연나부에서 권세를 믿고 폭정을 일삼자, 고국천왕은 이를
처벌하기 위해 직접 개입함.
↘ 고국천왕의 연나부 개입은 5부 연맹 체제가 지닌
각 부의 자율성을 정면으로 침해한 것임.
▶ 이에 불만을 품은 좌가려 등은 연나부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 191 왕도가
공격을 받았음. 그러나 고국천왕은 직속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진압하는
데 성공함.
- 그러나 이 반란에는 왕후의 친척과
유력한 연나부 세력이 가담하여 왕실 내부에 불신을 남겼고, 부족 귀족
세력의 위협이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드러냈음.
□ 을파소 등용
▶ 고국천왕은 왕권에 도전할 수 있는 5부 세력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4부에 인재 추천을
요구했음.
▶ 그 결과 순노부의 안류가 천거되었음.
↘ 고국천왕은 4부의 반발을 피하면서도 그들을 왕권
체제 속에 묶어두기 위해 인재 추천을 요구하였고,
↘ 4부는 반란이 진압된 상황에서 강화된 왕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최소한의 영향력을 남기려 자신들이
신뢰하는 인물을 추천함.
▶ 191 그러나
안류는 스스로 물러나고 농사에 힘쓰던 을파소를 추천하였으며,
▶ 고국천왕은 을파소의 뜻을 헤아려 그를 최고 관직인 ‘국상’에
임명하여 국정을 총괄하게 함.
↘ 국상은 제가회의를 주재하며 왕 아래에서 고구려
지배층을 대표하고 국정 전반을 총괄하던 최고 재상 직위로
추정됨.
□ 진대법 시행
▶ 194년 이른 가을
서리로 백성이 굶주리자, 고국천왕은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주고
관리들에게 백성을 구제하라 명하였음.
▶ 이후 고국천왕과 국상 을파소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 후
갚게 하는 진대법을 마련함.
↘ 이는 곡식 대여를 통한 구제책이자, 백성을 부
수장이 아닌 왕에게 직접 예속시켜 5부 연맹체제를 약화하고 모든
백성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왕권 강화 정책의 일환임.
■ 왕위 부자세습제 마련
- 고국천왕은 재위 중 왕위의 부자세습제를
확립했으나 후사가 없어,
▶ 197
고국천왕이 세상을 떠난 뒤, 왕후 우씨가 동생 연우와 혼인하였고,
연우가 제10대 산상왕으로 즉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