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고국천왕

국천왕, 국양왕
재위 179년부터 197년까지

고국천왕은 요동태수의 침공을 격퇴하고 5부의 자율성을 줄이며 중앙집권을 추진했음.
연나부 반란을 진압한 후 4부의 추천으로 을파소를 국상에 임명했으며,
진대법을 시행해 민생 안정과 왕권 강화를 동시에 도모함.

고국천왕

■ 즉위 이전
 ▶ 176 태자에 책봉됨.

■ 즉위 이후
 ▶ 179년 왕위에 오르고,
 ▶ 180 이어 연나부 출신 우씨를 왕후로 맞이함.

 ▶ 184 고구려가 세력을 넓혀가자 후한 요동태수가 침공했으나, 고국천왕은 직접 군을 이끌고 이를 물리침. 
 - 고국천왕은 이러한 외부의 군사적 압박을 극복하기 위해 5부의 자율성을 줄이고 왕권을 강화해 통합적 체제로 나아가고자 했음.

□ 연나부의 반란
 ▶ 190 어비류와 좌가려가 연나부에서 권세를 믿고 폭정을 일삼자, 고국천왕은 이를 처벌하기 위해 직접 개입함.
 ↘ 고국천왕의 연나부 개입은 5부 연맹 체제가 지닌 각 부의 자율성을 정면으로 침해한 것임.
 ▶ 이에 불만을 품은 좌가려 등은 연나부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 191 왕도가 공격을 받았음. 그러나 고국천왕은 직속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진압하는 데 성공함.
 - 그러나 이 반란에는 왕후의 친척과 유력한 연나부 세력이 가담하여 왕실 내부에 불신을 남겼고, 부족 귀족 세력의 위협이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드러냈음.

□ 을파소 등용
 ▶ 고국천왕은 왕권에 도전할 수 있는 5부 세력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4부에 인재 추천을 요구했음.
 ▶ 그 결과 순노부의 안류가 천거되었음.
 ↘ 고국천왕은 4부의 반발을 피하면서도 그들을 왕권 체제 속에 묶어두기 위해 인재 추천을 요구하였고,
 ↘ 4부는 반란이 진압된 상황에서 강화된 왕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최소한의 영향력을 남기려 자신들이 신뢰하는 인물을 추천함.

 ▶ 191 그러나 안류는 스스로 물러나고 농사에 힘쓰던 을파소를 추천하였으며,
 ▶ 고국천왕은 을파소의 뜻을 헤아려 그를 최고 관직인 ‘국상’에 임명하여 국정을 총괄하게 함. 
 ↘ 국상은 제가회의를 주재하며 왕 아래에서 고구려 지배층을 대표하고 국정 전반을 총괄하던 최고 재상 직위로 추정됨.

□ 진대법 시행
 ▶ 194년 이른 가을 서리로 백성이 굶주리자, 고국천왕은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주고 관리들에게 백성을 구제하라 명하였음.
 ▶ 이후 고국천왕과 국상 을파소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 후 갚게 하는 진대법을 마련함. 
 ↘ 이는 곡식 대여를 통한 구제책이자, 백성을 부 수장이 아닌 왕에게 직접 예속시켜 5부 연맹체제를 약화하고 모든 백성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왕권 강화 정책의 일환임.

■ 왕위 부자세습제 마련
 - 고국천왕은 재위 중 왕위의 부자세습제를 확립했으나 후사가 없어,
 ▶ 197 고국천왕이 세상을 떠난 뒤, 왕후 우씨가 동생 연우와 혼인하였고, 연우가 제10대 산상왕으로 즉위함.




# 참고 자료
[고국천왕]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9.6
[을파소]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