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신라 35대 경덕왕

김헌영, 34대 효성왕의 동생, 36대 혜공왕의 아버지
742부터 765년까지 약 24년 동안 왕위에 있었음.

경덕왕은 관제 정비와 한화 정책을 통해 신라의 중앙 집권화를 추진했으나,
진골 귀족의 저항으로 녹읍을 부활시켰고 그 결과 귀족 세력이 강화되었음.

경덕왕

■ 이전
 ▶ 경덕왕은 33대 성덕왕과 소덕왕후 김씨의 아들로 태어나
 ▶ 739.2 파진찬에 오른 뒤,
 ▶ 739.5 태자로 책봉되었음.

■ 재위 기간
 ▶ 742년 5월 효성왕이 세상을 떠나자 경덕왕이 즉위하였고, 
 ▶ 743.4 자식이 없던 왕후 삼모부인을 폐한 뒤 만월부인을 새 왕후로 맞이하였음.
 ↘ 태자 책봉과 즉위를 가능하게 했던 유력 진골 귀족들의 지지와 결별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임.

□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체제 추진
 ▶ 747.1 집사부의 장관인 중시를 시중으로 개칭하였으며, 
 ▶ 747 국학에 박사와 조교 직을 설치해 교육과 관료 양성 기능을 강화하였음.
 ▶ 748 또한 백관의 비리를 감찰하는 정찰 1인을 두고,
 ▶ 749 천문과 누각 업무를 교육하는 박사직을 신설해 관련 행정을 담당할 관리 확충함.

 ▶ 751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하기 시작했고, 석굴암도 같은 시기라고 이해됨.

□ 진골 귀족과의 타협
 ▶ 756 상대등이 왕권 강화책을 중심으로 한 정치 운영을 강하게 비판하며 시정을 요구하였고,
 ▶ 757 이후 경덕왕은 신문왕 때 폐지되었던 녹읍을 부활시켰음. 
 - 녹읍 부활은 한화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진골 귀족의 반발을 완화하려는 정치적 타협으로 이해되며, 이는 진골 귀족 세력이 다시 득세할 수 있는 기반이 됨.

□ 한화정책(관부·관직과 지방 행정 지명을 중국식으로 개편) 시행
 ▶ 757.12, 759.2 지방 행정 지명을 일괄적으로 개정하고, 관부와 관직의 명칭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였음. 
 ↘ 골품제 아래 귀족 연합정치의 관행 속에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관부·관직·지명 등을 당식으로 개편해 중앙집권적 관료제 운영을 지향한 정책으로 볼 수 있음
 ▶ 758 한편, 율령박사 2인을 두어 법제 연구와 교육을 통해 통치 제도의 정비를 지속하였음.

 ▶ 764 김양상이 시중에 임명되었으며, 훗날 36대 혜공왕을 시해하고 37대 선덕왕이 됨.

■ 사후
 ▶ 765년 6월 경덕왕이 세상을 떠나자( 경주 경덕왕릉 , 사적 제23호) 8세의 혜공왕이 즉위하였고,
 ▶ 정치적 주도권은 진골 귀족 세력으로 이동하였음.
 ▶ 776 지명과 관부·관직 명칭 개정이 원상으로 복귀됨.




# 참고 자료
[경덕왕]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