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경덕왕은 33대 성덕왕과 소덕왕후 김씨의 아들로
태어나
▶ 739.2
파진찬에 오른 뒤,
▶ 739.5
태자로 책봉되었음.
■ 재위 기간
▶ 742년 5월 효성왕이 세상을 떠나자 경덕왕이 즉위하였고,
▶ 743.4 자식이
없던 왕후 삼모부인을 폐한 뒤 만월부인을 새 왕후로 맞이하였음.
↘ 태자 책봉과 즉위를 가능하게 했던 유력 진골
귀족들의 지지와 결별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임.
□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체제 추진
▶ 747.1 집사부의 장관인 중시를 시중으로 개칭하였으며,
▶ 747
국학에 박사와 조교 직을
설치해 교육과 관료 양성 기능을 강화하였음.
▶ 748
또한 백관의 비리를 감찰하는 정찰 1인을 두고,
▶ 749
천문과 누각 업무를 교육하는 박사직을 신설해 관련 행정을 담당할 관리
확충함.
▶ 751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하기 시작했고, 석굴암도 같은 시기라고
이해됨.
□ 진골 귀족과의 타협
▶ 756 상대등이
왕권 강화책을 중심으로 한 정치 운영을 강하게 비판하며 시정을
요구하였고,
▶ 757
이후 경덕왕은
신문왕 때 폐지되었던
녹읍을 부활시켰음.
- 녹읍 부활은 한화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진골
귀족의 반발을 완화하려는 정치적 타협으로 이해되며, 이는 진골 귀족
세력이 다시 득세할 수 있는 기반이 됨.
□ 한화정책(관부·관직과 지방 행정 지명을 중국식으로 개편)
시행
▶ 757.12, 759.2 지방 행정 지명을 일괄적으로 개정하고, 관부와 관직의 명칭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였음.
↘ 골품제 아래 귀족 연합정치의 관행 속에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관부·관직·지명 등을 당식으로 개편해 중앙집권적
관료제 운영을 지향한 정책으로 볼 수 있음
▶ 758 한편,
율령박사 2인을 두어 법제 연구와 교육을 통해 통치 제도의 정비를
지속하였음.
▶ 764
김양상이 시중에 임명되었으며, 훗날 36대 혜공왕을 시해하고 37대
선덕왕이 됨.
■ 사후
▶ 765년 6월
경덕왕이 세상을 떠나자( 경주 경덕왕릉 , 사적 제23호) 8세의 혜공왕이 즉위하였고,
▶ 정치적
주도권은 진골 귀족 세력으로 이동하였음.
▶ 776
지명과 관부·관직 명칭 개정이 원상으로 복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