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1862 임술 농민 봉기 → 안동 김문의 정치적 영향력이 흔들림
■ 흥선대원군 집권
→ 1863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군은 대원군에 봉해짐
- 흥선대원군은 세도 정치기 세도가들처럼 비공식적으로 권력
행사
→ 1864
흥선대원군의 왕궁 출입을 위한 전용문 신설, 조선의 정책 심의 기구인
의정부 기능 회복
→ 1865 세도 가문이 장악한 비변사를 혁파(삼군부 부활), 다수의 서원 철폐, 경복궁 중건 사업 추진, ‘대전회통’
편찬 등
→ 1866
병인박해(~1873), 제너럴셔먼호 사건,
병인양요
→ 1866
사창제를 실시하여 지방관이나 향리가 아닌 다른 이에게 운영을
맡김 - 삼정의 문란(환곡) 정비
→ 1868
남연군묘 도굴 사건 →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이 강화됨
→ 1869?
양전 사업을 통해 양반과 토호가 누락시킨 토지를
찾아냄 - 삼정의 문란(정전) 정비
→ 1871
호포제를 실시하여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 - 삼정의 문란(군정) 정비
→ 1871
신미양요 → 척화비를 건립하여 통상 수교 요구 거부 의지를 확고히
함
→ 1873.11
흥선대원군은 전용문이 폐쇄되자 양주로 내려가 은거
■ 흥선대원군 실각
→ 1876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 1881
이재선 역모사건 - 흥선대원군 배후설
→ 1882 임오군란 - 흥선대원군이 개입하여 권력을 잡지만, 청군에게 납치되어
연금됨
→ 1894.6.21 새벽
일군은 경복궁 점령하고 흥선대원군이 입궐함
- 일본과
사이가 틀어지며 청군에 밀서를 보내고 농민군에게 항일봉기를
부추겼지만, 밀서가 일본에 들킴
→ 1894.8
청·일 전쟁
→ 1895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 - 흥선대원군 입궐
→ 1898.2.22
훙서